“국민참여재판은 ‘동료에 의한 재판’..확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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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은 ‘동료에 의한 재판’..확대 필요”

[화제의 법조인]김상준 법무법인 케이에스앤피 대표변호사
국민참여재판 도입 당시 실무 작업 주도
재판부 ‘판결’-배심원들 ‘평결’ 일치도 93% 넘어
“제도 활성화 안 돼 아쉬움..법원 차원서 홍보해야”

“싫어요!”
지난달 개봉한 영화 ‘배심원들’에서 ‘유죄냐, 무죄냐’를 닦달하는 질문에 8번 배심원은 이렇게 답했다. 드러난 증거·증언만으로 유죄가 확실해 보이는 모친 살해사건에서 이 남성만이 유일하게 의문을 제기한다. 두터운 수사기록 사이에 허술함이 발견될 때마다 서로 다른 직업·성향의 배심원들도 하나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의견을 합쳐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내놓는다.

■국민참여재판, 우려 속 긍정 평가
한국형 배심재판 제도인 국민참여재판이 2008년 시작된 지 10년이 넘게 흘렀다. 그 동안 수만 명의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법정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자문을 맡은 김상준 법무법인 케이에스앤피 대표변호사(58·사법연수원 15기·사진)는 판사 시절 국민참여재판 도입의 틀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2003년 출범한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서 ‘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하는 방안’에 관한 법원 측 전문위원을 맡았다.

“1990년대 미국 유학생활을 통해 배심제도를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단행본을 출간하면서 ‘한국에도 배심제 형태의 국민사법참여제도를 도입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이 때 처음으로 하게 됐죠. 이러한 경력으로 국민참여재판 도입과 관련한 회의와 안건을 만드는 실무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그 무렵 한인섭 서울대 교수님과 변호사였던 김선수 대법관 두 분이 제도 도입 과정에서 선봉에 섰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제도 도입과정에서는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해 평결을 내리는 영미식 ‘배심형’과 선출된 참심원이 법관과 함께 합의체를 구성하는 ‘참심형’ 중 어느 제도를 택할지를 놓고 격렬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배심제를 전제로 참심제의 특징을 일부 가미한 형태의 제도를 만들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제도 시행 직전까지 국민이 참여하는 재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 나왔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우였다는 게 확인됐다.

“국민참여재판을 경험한 판사와 변호사의 입장에서 보면 재판에 참여한 시민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진지하고, 신중하게 심리에 임하고 있어요. 토론을 통해 내놓은 의견들도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이어서 판사들의 평가도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실제 통계를 보면 배심원들의 유무죄 평결과 재판부 판결의 일치도는 93%가 넘습니다.”
■”제도 활성화 방안 마련해야”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데 반해 정작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는 사건은 매년 200~300건으로, 전체 형사 재판의 5%에도 못 미친다. 우리나라보다 제도 채택이 한 발 늦은 일본과 비교해서도 턱 없이 적은 수준이다.

“당초 제도가 처음 시행될 때 점차 확대되리라고 기대했지만, 통계가 말해주 듯 여전히 연간 처리되는 사건은 비슷하게 머물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점에서 법원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정 유형의 사건은 반드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도록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겠죠. 배심원 소환장을 보냈을 때 시민들이 법원에 출석하지 않은 비율도 높은 편인데, 이 역시 제도적 보완을 통해 참여율을 높여 재판의 객관성을 높일 필요성이 있습니다.”
전체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비록 낮지만, 사법부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전 세계적인 경향을 보면 배심원들은 판사보다 무죄에 치우친 부분이 있다. 이는 일반 시민이 판사나 공판검사와는 다른 잣대로 사건을 바라본다는 점을 의미한다. 법조인과 다른 시각에서 엄격한 증거조사를 통해 결론에 도달한다는 점은 가혹하거나 유죄의 오판을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배심원제가 갖는 본질적 의미는 ‘동료에 의한 재판’입니다. 엘리트 판사가 아닌 시민 동료가 법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유무죄를 따지기 때문이죠. 법관은 피고인이 처한 실상과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 국가의 편을 들어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는 반면, 배심원들은 피고인과 같은 눈높이에서 좀 더 증거를 엄격하게 보고 유죄로 예단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일반 재판에선 쉽게 넘어갈 사안도, 판사가 배심원들을 일일이 이해시키면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가 심도 깊게 진행될 수 밖에 없어 재판의 질적 수준도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email protected] 이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