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고민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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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고민의 뿌리

‘그가 정말 죽였을까? 피고인 주장대로 피해자 측의 자작극이라면 과연 피해자는 어디로 간 걸까?’

시신의 흔적도, 산 사람의 행방도 오리무중인 이 사건을 두고 시름이 깊어졌다. 구속 만기 때문에 이제 더는 결론을 늦출 수 없게 된 마당에 깊은 밤 고요 속에 외로움이 엄습했다.

물론, ‘잘 모를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 원칙이 있기는 하다. 원칙대로 무죄를 선고하면 그만일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책임감의 무게 때문에 이 원칙을 가지고 결론을 내기엔 어딘지 꽁무니를 빼는 듯하여 위안이 되지 못했다. 형사재판장 일을 할 당시 난해한 사건 결론을 앞두었던 어느 야밤의 고뇌와 고충에 관한 기억이다.

판사의 고민은 직업적 숙명이다. 판사 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기억에 남게 된 것은 낯 뜨거운 이 말뿐이다. 고민하지 않는 판사는 도리어 남을 고민스럽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겠다. 지금은 법대 아래에 선 변호사 처지에서 법대 위를 바라보게 됐다. 고민하는 판사님들의 흔들림을 발견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이런 심산 때문이리라.

초임 판사 때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몸 둘 바 모르게 괴로웠던 시절을 보냈다. 아무나 판사 하는 것이 아니군, 가슴을 쓸어내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날 즈음이 되니 서당 개 풍월을 읊게 되면서 사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는 게 좀 생겼는지 법정에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소리를 들어가며 남을 훈계도 하는 처지가 됐다. 그때는 크든 작든 사건 해결에 대한 답이 훤히 보였다. 자신감이 차고도 넘쳤는지 청산유수의 타고난 판사가 된 기분이었다.

일말의 고민을 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위험천만한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될 때까지는 또 상당한 세월 흐름을 기다려야 했다. 인생사 매사가 뜻한 대로 이루어지기는커녕, 늘 반대로 가는 실패담의 경험이 쌓이게 됐다. 나의 선택과 판단에 대한 회의가 점점 깊어질 무렵, 내 재판일도 마찬가지로 허다한 실수와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번득 머리를 때렸다.

그것은 나의 자만과 편견, 섣부른 예단 때문일 수 있다는 자각이었다. 왜 남들 눈에는 다 보이는 것을 나만 못 보았지? 진실과 거짓의 교차 속에서 벌어지는 갈림길 판단에서 혹시 거짓말에 속아 그쪽 편을 주로 들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공부에 무언가 빠진 것이 있는 성싶은데 그 부족함을 무엇으로 메워야 할까? 인생과 일에 대한 위기감 때문에 섣불리 앞으로 나가기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됐다.

그때 만나게 된 고마운 스승들의 인도에 따라 다시 부족한 공부를 시작했다. ‘인간의 행동과 태도에 대한 이해’가 공부의 주제다. 이런 공부를 하던 끝에 ‘오판’을 주제로 한 학위를 받을 수 있었고, 그에 바로 이어 같은 주제로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영광을 얻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실수와 오류, 고민 따위가 배움과 가르침의 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인생사 난제 앞에서 오답을 피하고 정답을 선택해야만 심간이 편해질 수 있다는 면에서 우리는 늘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고민의 뿌리는 정답이 선득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때 우리 마음이 어떤 합리적 규칙에 따라 움직여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규칙은 애당초 없을 수도 있다.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는 다음의 말로 귀결된다. 우리는 늘 오류, 실수를 저지르는 존재다. 체계적 오류(system error)는 신(神)이 될 수 없는 인간의 세계에서는 궁극적으로 불가피하다. 다만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오류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데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 아침, 여전히 빈발하고 있는 고민을 내 마음 밖으로 꺼내놓고 그것을 남의 눈으로 바라보기로 한다. 고민과 실수를 허심탄회하게 바라보는 데 아마도 이 늦가을 청명한 공기만 한 것도 없는 듯하다. 하여 이 계절을 즐겨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셈이다.

[김상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