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내가 없는 세상으로 날아갈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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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내가 없는 세상으로 날아갈 준비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우리 시대의 영원한 지성 고(故) 이어령 선생은 생을 마감하기에 앞서 이 동요 구절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주시며 저 높이 날아가셨다. 한 TV 방송물 ‘이어령의 내가 없는 세상’에서 고인은 암 투병 와중에 이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면서 우리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을 미리 영상에 담으셨다. 그중 어느 한 대담 자리에서 아홉 번을 접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하신 말씀은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이 말씀을 그대로 옮겨 본다.

“뜨면 내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 뜨는 것에 그치면 바람 부는 대로 가게 된다. 고로 날아야 한다.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뜨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방향을 가지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엔진을 가져야 한다. 본인 힘으로 날아갈 수 있는 동력을 가져야 한다. 비전을 만들어서 방향을 정해야 한다. 아홉 번의 고비를 접어 삶의 마지막 순간 비행을 할 때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로 날아간다면 미소를 남기고 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내가 없는 세상을 남겨 놓고 언젠가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을. 아쉽지만 어쩔 수는 없다. 다만 선생께서 남기신 말씀마따나 미소 속에서 갈 수만 있다면 참 다행이겠다.

하늘을 나는 진짜 비행기를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던 어린아이 시절. 정확한 기억으로는, 이 노래는 남이 만든 항공사 비행기 노래가 아니라, 내가 접어 만든 종이비행기를 위한 노래였다. 내 비행기가 조금이라도 더 높고 길게, 멀리 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이 노래라도 하늘 높이 날려 보내고 싶었다. 그건 순진무구한 아이의 꿈과 같은 노래였다.

아이의 꿈은 세월이 흘러 이제 현실만이 남았다. 뜨고 날기는커녕 무동력 종이비행기에 올라탄 신세에 바닥에서 파닥거리며 지낼 뿐이다. 어떤 삶을 이끌어갈지도 여전히 막막한 지금. 선생의 녹록지 않은 아홉 고비 인생 숙제는 그 어느 하나라도 풀어내기엔 어휴~ 버겁기만 하다.

그래도 선생의 흉내를 조금이라도 내보자 치면서 든 생각이 있다. 나도 내가 없는 세상을 위해 나만의 영상물 하나쯤은 미리 찍어두면 어떨까.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준비된 글보다는 즉흥의 생각을 말로 옮기는 게 좋겠고, 밋밋한 녹음보다는 동영상으로 기록해 두는 것이 더 생생할 것이리라. 다만 이 영상물 궁리를 하다 보니 방침으로 가장 먼저 정해야 할 일이 있었다. 즉 이 영상물의 주된 시청자는 누구지? 그 답의 향방에 따라 담아야 할 콘텐츠가 판가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의 의도로 볼 때 답은 명백했다. 이 영상물은 남사스러울 수 있을 터. 이것을 남에게 내보이는 것은 피하는 게 좋을 듯싶다. 그래야 위선 없이 진솔한 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오늘의 내가 지내온 나를 되짚어 보면서 앞으로 살아가다가 떠나버릴 나에게 남기는 말 정도를 담을 수 있겠지. 스스로 몰래 이런 영상물을 만들다 보면 혹여 선생의 말씀처럼 미소 속에서 비상(飛翔)하는 행운을 누릴 수는 없을까. 이런 간특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상상 속에서 든 기대는 소년의 꿈 꾸기나 혹시 매한가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의 나래 속에 잠기다 보니, 또 직업병이 도졌다. 조금 관점은 다르지만 내가 없는 세상 준비를 위한 법 제도적 문제 하나가 떠올랐다. 이른바 ‘유언(遺言)’ 문제다. 유언에 얽힌 법적 애환. 고령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우리의 당면 과제 중 하나다. 한 사람의 죽음, 유언, 상속의 법적 분쟁으로 살아남은 이들 사이에서 의가 상해 때론 애꿎은 고생을 하는 일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확한 방식과 실질을 갖춘 유언이 있었더라면 많은 문제를 풀어줄 수도 있었다. “유언은 정신이 멀쩡할 때 미리 해 두는 것이고 매년 다시 고치면 돼.” 일전에 뵀던 원로 법조인 스승님 지적에 귀가 번쩍 뜨였다. 아하, 내 영상물 한 부분에 넣어볼 대목이겠네!

나의 떠남으로 남게 된 세상에 도움을 드릴 힘은 그리 없을 성싶다. 다만 적어도 귀찮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면 이런저런 준비가 조금은 필요하겠다. 봄비 촉촉한 이 계절을 남기고 선생은 저 멀리 높이 날아가셨지만, 말씀은 남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상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