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너무 과한 정보”로부터의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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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너무 과한 정보”로부터의 도피

수전 서랜던, 케이트 윈즐릿이 주연한 영화 ‘완벽한 가족(원제 Blackbird2019)’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맞춰 오랜만에 주인공 노부부가 자신들의 외딴 바닷가 집으로 딸 가족을 모이게 하면서 시작한다. 가족은 잠시 한적한 시간을 내서 집 근처 해변 백사장 산책에 나선다. 노부부는 이 장소가 바로 그들이 젊은 시절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곳임을 말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인연을 맺은 이곳, 그리고 그 경관에 매료돼 부근 땅을 사서 이 집을 지었고 바로 첫아이, 큰딸을 가졌다고 말하려 한다. 큰딸은 그 순간 귀를 막으면서 “TMITMI“를 외친다.

TMI란 ‘Too much information(너무 과한 정보)’의 줄임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때 유행했던 용어다. 대화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도중, 다른 사람에 관한 쓸데없으면서도 불쾌할 수 있는 말을 듣게 되는 상황에서 ‘그만해, 별로 듣고 싶지 않아’라는 뜻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 사용한다.

네트워크 연결 과잉으로 번잡하기 그지없는 이 시대에서 우리는 늘 피곤해진다. 잠시라도 휴대전화를 두고 나올 때면 어쩐지 홀로 버려진 듯해 안절부절못하는 일상을 겪어내고 있다. 특종과 단독 보도는 왜 그리도 많은지,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 게시글을 열어보곤 ‘또 낚였네’ 후회하기 일쑤다. 그 과정에서 흘러나온, 알 만한 유명 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남들의 사생활 정보가 범람한다.

그 정보가 꼭 정확한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달자의 의도에 이끌려 ‘슬퍼요, 화나요’ 버튼을 충동적으로 눌러놓고 같이 분노하고 미워하며 애써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긴, 듣고 싶지 않은 말에 마음을 빼앗겨 공연히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이 정보가 나를 잘못되게 오도하려는 음험한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될 때도 있다. 이 때문에 내 생각과 선택이 방해받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지기도 한다.

법적 분쟁 속에서의 판단 역시 정확한 정보 소통이 더더욱 요긴하다. 그러하건만, 때론 어렵고 복잡한 사건을 마주치노라면 너무나도 혼미한 각종 증거, 정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는 것도 법적 판단의 숙명이자 어려움이다. 허망한 말에 이끌린 나머지, 정작 중요한 정보를 놓치고 오판을 범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오류에 대비해 소송법, 증거법 같은 여러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실수는 끊임없는 듯하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오판의 원인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이 연구는 전 세계에 걸쳐 방대한 성과가 축적돼 있고 그 문제점에 관한 관심의 뿌리도 대단히 깊은 편이다. 실무상으로도 법률 전문가들을 고심에 빠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현안은 바로 ‘법은 잘 알지만, 사실은 잘 알지 못함’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겠다. 정확한 사실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오염된 소음을 잘 분간해야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분간에 방해되는 말을 들을 때 제대로 TMI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는 법적인 사실 판단이 어려운 사건들을 추려 오판의 원인을 실증적으로 분석·공부하는 연구자다. 그리고 이 분야를 주제로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정확한 사실 판단을 위한 전문가 행세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 법적 판단이 늘 정확할까에 대해서는 스스로 확신하기 어렵다. 그만큼 진실 발견은 녹록한 일이 아니다.

기실 일상사 판단조차 그리 잘하지 못하는 주제임을 잘 알고 있다. 남들이 좋다는 말을 듣고 주식을 좀 사둔 것이 있었는데, 최근 반도체 시황 전망이 어두워졌네, 어떠네 하면서 돌연 주가가 폭락했다. 늘 그러하듯이 또 손해를 보고 말았다. 바로 직전 그 재벌 총수가 풀려나면 뭐가 좀 좋아진다고 다들 기대한 것에 대한 역습을 맞은 것이다. 총수 개인의 가석방과 전 세계 반도체 시황 간 관계에 관한 공부가 부족했단다. 또 당했네, 탄식이다.

이번 주말은 정말 남들 말에 현혹돼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도록 휴대전화를 꺼 둘 작정이다. 그 대신 혼자 조용하게 ‘완벽한 가족’을 한 번 더 보고 영화 원제목이 Blackbird(찌르레기)로 된 이유를 따져봐야겠다. 그간 의문을 가졌던 바가 풀렸으면 좋겠다. 에잇 TMI!!!

[김상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