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노여움을 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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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노여움을 풀어주세요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시대
어느 순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마음의 거리두기로 변한 걸까

저무는 2020년 한해 돌아보면
`그때 왜 화가 났나` 싶다가도
주어진 시간 유한성 생각하면
좋은 사람들 만나기에도 부족

새해에는 남은 시간 아껴 살자

  • 입력 : 2020.12.26 00:05:01   수정 :2020.12.26 13:29:30

성탄절에서 이어지는 올해 마지막 주말 연휴. 올 한 해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는 너무나도 강력했다. 정말이지 오늘 이 시점에서 돌아보아 2020년 한 해를 하루같이 살았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한 해를 지배하는 주제의 장악력이 막강했던 나머지 다른 다양한 영역에 경험, 생각을 나눌 여지가 그다지 없기는 했었나 보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그치지 않고 확산하는 감염병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고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니 행동반경을 줄여야 했던 올해도 그다지 녹록지는 않았던 일들이 여럿 있기는 했다. 여전히 어김없이 잡다한 일들을 겪기는 했구나. 그러고 보니 좋았던 일도 있었겠건만 그런 것보다는 마음앓이를 했었고 지금도 마음의 상처로 남은 일들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올해의 표제어가 된 `사회적 거리 두기` `언택트`가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의 거리 두기`로까지 잘못 비화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때 왜 그렇게 화가 났었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던 일 한두 가지가 생각난다. 대체로 노여움을 밖으로 내보이기 일보 직전, 멈출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음속에서 일어난 성깔을 이기지 못하고 하지 말았어야 할 불필요한 언사를 써가며 화를 분출, 폭발시켰더라면 상대는 말의 날카로운 흉기에 찔려 대단히 아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내뱉어놓은 내 분노의 표현은 고스란히 반사되어 결국 나 역시 희생의 먹잇감으로 전락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생긴 속병, 성난 느낌을 품었던 기억은 그 후로도 상처로 남아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를 골수에 사무치도록 미워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화를 북돋아 상처를 서로 주고받을 만한 일도 아니었을 수 있다. 역지사지해 보면 상대의 입장을 다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인데, 단지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노여워하기에는 우리 관계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때 성이 난 나를 돌아보면서, 왜 이 나이가 되도록 이처럼 어리고 미숙할 뿐인지 자책하게 된다. 더구나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결론은 너무나도 뻔할 터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좋아하고 배려하며 협력하는 것만으로 채우기에도 남아 있는 내 시간은 빠듯해 보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 성마름은 비단 이뿐만은 아닌 듯하다는 데 다음 생각이 미친다. 요즘 인터넷,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모든 매체에는 분노와 증오를 유발하는 이슈들로 온통 도배되어 있다. 혐오, 가증스러운 악당, 악마들이 차고 넘친다. 다만 반드시 내 문제도 아닌 남들의 사회적 이슈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며 살고 있는가. 그로 인해 부질없고 허망하게도 이런 노여움 때문에 스스로 마음에 상처를 새기면서 자해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각자가 달리하는 생각과 입장 때문에 모든 사회적 이슈에서 적과 동지가 갈린다. 반대 의견은 그 존재 그 자체가 혐오이자 용납할 수 없는 배척의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다. 소수의견, 절충의 차선책은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이 사회에 하나의 큰 감염병같이 만연해서 번져나가고 있는 미움 바이러스는 이제 불치의 골이 너무 깊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 대목에서 이를 치유해야 할 법과 사법제도는 화해, 평화의 도구가 아닌, 적을 무찌르는 전쟁터 무기로 변질되어가는 것에 가슴 아프다.

경기도 안성 미리내 성지 앞에 가면 `별 헤는 카페`라는 이름의 아담한 셀프 카페가 있다. 스스로 커피를 끓여 마시고 알아서 값을 치르는 무인 카페다. 이곳은 신체장애와 시한부 인생 암 투병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글로 사랑을 일러 주시다 57세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고 장영희 교수를 기리는 카페다. 그가 남긴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수필집은 성탄절 연휴 속 노여움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인 듯싶다. 다만 꼭 그 수필집을 구해서 다시 읽어볼 것까지도 없을 것이다. 그 제목 자체가 분명히 말하고 있듯이, 내년에는 남은 시간을 좀 더 아껴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인이 남겨둔 무인 카페 커피 여운이 짧지 않아 보인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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