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니캅’을 벗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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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니캅’을 벗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2006년 여름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 지나 무하마드(Ginnab Muhammad)는 렌트를 한 차량 파손을 이유로 렌터카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요구를 받았다. 무하마드는 이 요구를 거절했다. 차량 도난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이유였다. 대신 그는 미시간주 소액법원에 손해배상책임이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10월 11일 첫 재판이 열렸다. 법정에 나온 무하마드는 니캅을 착용한 상태였다. 니캅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여성 의복 중 하나다. 부르카나 니캅을 착용하게 되면 눈만 내보일 뿐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분을 가리게 된다. 특히 공공장소, 성인 남성 앞에서 이런 의복을 입는 것은 오랜 종교적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재판을 담당한 폴 파룩(Paul Paruk) 판사는 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원고에게 니캅 중 얼굴 베일을 벗을 것을 요구했다. 표정을 직접 보면서 말을 들어야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것이 법이 요구하는 바라고 설명했다. 만일 끝까지 벗지 않으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할 도리 외에는 없으니, 잘 알아서 선택하라고 강경하게 부연했다.

무하마드는 판사의 요구를 거절했다. 재판에 지더라도 코란의 가르침과 전통을 어길 수 없다는 쪽을 선택했다. 대신 여성 판사 앞이라면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되니 절차적 편의를 봐 달라고 요청했다. 그 소액법원에는 남성인 파룩 판사 한 사람만 있었던 관계로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판사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신 렌터카 회사의 별소 청구를 받아들여 2083달러 지급을 명했다. 무하마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연방법원에 종교의 자유 및 적법한 재판을 받을 헌법상 권리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을 위시하여 서구권의 여러 법정 재판에서 모슬렘 교도 여성의 얼굴 가림을 금지하는 조치들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헌법상 기본권 침해의 법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문명의 충돌, 인종차별, 여성 인권 문제 등등의 여러 정치적·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사안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테러와의 전쟁 이후 근 20년간 서구권이 갖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거부감, 위기의식이 법정에 투영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오판 없는 팩트 파인딩을 전문 분야로 삼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 사건에서 또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을 보아야만 말의 참과 거짓을 잘 분간할 수 있다는 믿음은 과연 타당할까. 이 도발적 질문은 분쟁을 재판으로 해결하는 장면에서 꽤 실천적 의미가 있는 듯하다. 하여 법정에서 진상을 가리는 판사의 직업 윤리적 자세에도 생각이 미친다.

거짓말을 하면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눈 맞춤을 하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고 거짓을 알아낼 수 있다. 갑자기 찔러봤을 때 당황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거짓말하는구나 알 수 있지만, 오히려 잘 준비된 거짓말쟁이는 너무나 차분하게 능변을 늘어놓기 때문에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런 등등의 통념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들 통념이 때론 통하기도 하는 듯하다. 하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실증적 연구가 다수 나와 있기도 하다. 오히려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과 대면하여 말을 들은 것이 화근이 될 때가 있다. 그러면 더 쉽게 잘 속아 넘어갈 수도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무하마드 사건 담당 판사는 이런 취약함 없이 얼굴을 직접 보고 진상을 알아내는 어떤 용빼는 수법을 과연 가지고 있었을까. 법정에서 자신의 소송지휘를 순순히 따르지 않는 사건관계인을 압도해서 불이익을 줘야 직성이 풀린다는 고약한 권위의식과 우월적 선민의식 말고서 말이다.

법정에서 판사가 사람을 대면하고 말을 직접 들어보아야 그 진위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소송법의 기본 원칙이다. 다만 그런 원칙을 실천에 옮겨 허심탄회하게 참 거짓을 가릴 유연한 태세가 되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사건의 진상은 현장에 있는 것이지, 법전에서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법대 위에 점잖게 앉아 법의 형식 논리에 매몰되어 권위를 휘두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니캅을 벗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현장 속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어 사람들의 애환을 아프게 공감하고자 두루 경청하는 판사들이 특별히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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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0/08/889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