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당신의 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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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당신의 친구는?

어떤 범죄 혐의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라는 통지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가 오해를 살 만한 일에 연루된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 범죄는 자신이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일의 진상을 차근차근 해명하기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대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던 차, 병중에 있던 노모가 하루 이틀을 버티기에도 역부족해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구속되는 것도 억울한 터에 홀로 남아 외롭게 떠나가실 노모 뒷바라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어쨌든 이 위기를 넘겨야 하겠는데 신세 한탄이나마 터놓고 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고 말하기엔 여의치 못했다. 하여 그는 평생의 절친, A를 찾았다. 친구 A는 그의 부탁을 받았는지 변호사를 찾아갔다. 그 범죄는 자신이 저지른 것이기에 친구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단다. 이제 더는 숨어 있지 않고 자수하겠으니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의 전후 맥락상 A의 자백에는 문제가 많았다. 사리로 볼 때 A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는 객관적 사정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변호사는 추궁 끝에 A로부터 자수하겠다는 근본 이유를 알게 됐다. 딱한 친구의 처지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노모의 임종이나마 지킬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대신 혐의를 뒤집어쓰는 것이 친구의 도리라고 생각했단다. 아무리 절친의 처지가 딱하기로서니…. 거짓 자백을 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오는 일이었다. 변호사는 A를 잘 타일러 돌려보냈다.

친구라? 뒷맛이 그리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사연이 도대체 친구란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신 나서 줄 친구 한두 명 정도라도 얻었다면 당신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범죄 혐의를 대신 뒤집어써 줄 정도가 돼야만 한다는 말까지는 아니다. 이 말은 위기 상황 속에서 자기 일처럼 나서 줄 수 있는 사람을 친구로 두고 있는가를 강조하는 비유 정도로 이해한다면 충분하겠다.

이런 강조의 말은 인간 관계의 성실한 상호 작용 속에서 살아왔다는 증표를 당신의 친구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좋은 친구가 주변에 있다는 것은 당신도 그 친구에게 좋은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뜻한다. 주변에 진심 어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두고 있다면 일단 그와의 인간 관계 측면에서 오케이 사인을 받을 수 있겠다.

또한, 대개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그의 친한 친구를 보면 그가 누구인지 짐작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취향이나 성품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하여 배우자감을 찾는 젊은이에게 조언해주기도 한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려면 그의 절친을 불러내서 같이 시간을 보내보라고. 그들끼리 나누는 익숙한 대화 내용, 몸짓 속에서 그가 당신을 만나기 이전에 어찌 살아왔는지를 짚어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친구는 누구지? 당신은 친구를 몇이나 두고 있지? 이런 질문 앞에서 왜소함을 느끼며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느낌일까. 여태 살아오면서 알게 된 지인들의 명단을 놓고 친구를 분간해보는 작업을 해 보니 그사이 인간 관계의 성실함에서 반성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만남은커녕, 1년이 넘도록 전화, 문자메시지 한 통도 보내지 못한 친구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가고 있다.

여하튼 친구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제한해 버리기엔 주저되는 면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친구를 다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기에. 경조사 때 주저 없이 만사를 제쳐 놓고 찾아야 하는 분들, 또 내 경조사에 연락을 드리지 않으면 결례가 될 수도 있는 분들의 명단이 바로 친구, 친지들 명단일 수 있겠다. 친구, 우정에 관한 과학적 탐구 결과를 정리한 로빈 던바 교수의 ‘프렌즈'(2021)에 따르자면 그렇다.

30·40대를 정점으로 해서 친구들 수가 늘다가 그 이후부터 친구를 잃어가는 것이 전 세계적 연구 성과란다. 나이가 들면서 왜 자꾸 외로워지는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주말, 내 무심함에 섭섭해할 분에게 순차 안부 문자라도 보내야 할 성싶다. 세월이 더 가기 전에 말이다.

[김상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