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이 위기를 넘겨야 하겠는데 신세 한탄이나마 터놓고 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고 말하기엔 여의치 못했다. 하여 그는 평생의 절친, A를 찾았다. 친구 A는 그의 부탁을 받았는지 변호사를 찾아갔다. 그 범죄는 자신이 저지른 것이기에 친구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단다. 이제 더는 숨어 있지 않고 자수하겠으니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의 전후 맥락상 A의 자백에는 문제가 많았다. 사리로 볼 때 A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는 객관적 사정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변호사는 추궁 끝에 A로부터 자수하겠다는 근본 이유를 알게 됐다. 딱한 친구의 처지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노모의 임종이나마 지킬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대신 혐의를 뒤집어쓰는 것이 친구의 도리라고 생각했단다. 아무리 절친의 처지가 딱하기로서니…. 거짓 자백을 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오는 일이었다. 변호사는 A를 잘 타일러 돌려보냈다.
친구라? 뒷맛이 그리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사연이 도대체 친구란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신 나서 줄 친구 한두 명 정도라도 얻었다면 당신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범죄 혐의를 대신 뒤집어써 줄 정도가 돼야만 한다는 말까지는 아니다. 이 말은 위기 상황 속에서 자기 일처럼 나서 줄 수 있는 사람을 친구로 두고 있는가를 강조하는 비유 정도로 이해한다면 충분하겠다.
이런 강조의 말은 인간 관계의 성실한 상호 작용 속에서 살아왔다는 증표를 당신의 친구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좋은 친구가 주변에 있다는 것은 당신도 그 친구에게 좋은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뜻한다. 주변에 진심 어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두고 있다면 일단 그와의 인간 관계 측면에서 오케이 사인을 받을 수 있겠다.
또한, 대개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그의 친한 친구를 보면 그가 누구인지 짐작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취향이나 성품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하여 배우자감을 찾는 젊은이에게 조언해주기도 한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려면 그의 절친을 불러내서 같이 시간을 보내보라고. 그들끼리 나누는 익숙한 대화 내용, 몸짓 속에서 그가 당신을 만나기 이전에 어찌 살아왔는지를 짚어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친구는 누구지? 당신은 친구를 몇이나 두고 있지? 이런 질문 앞에서 왜소함을 느끼며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느낌일까. 여태 살아오면서 알게 된 지인들의 명단을 놓고 친구를 분간해보는 작업을 해 보니 그사이 인간 관계의 성실함에서 반성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만남은커녕, 1년이 넘도록 전화, 문자메시지 한 통도 보내지 못한 친구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가고 있다.
여하튼 친구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제한해 버리기엔 주저되는 면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친구를 다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기에. 경조사 때 주저 없이 만사를 제쳐 놓고 찾아야 하는 분들, 또 내 경조사에 연락을 드리지 않으면 결례가 될 수도 있는 분들의 명단이 바로 친구, 친지들 명단일 수 있겠다. 친구, 우정에 관한 과학적 탐구 결과를 정리한 로빈 던바 교수의 ‘프렌즈'(2021)에 따르자면 그렇다.
30·40대를 정점으로 해서 친구들 수가 늘다가 그 이후부터 친구를 잃어가는 것이 전 세계적 연구 성과란다. 나이가 들면서 왜 자꾸 외로워지는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주말, 내 무심함에 섭섭해할 분에게 순차 안부 문자라도 보내야 할 성싶다. 세월이 더 가기 전에 말이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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