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독도, 울릉도, 그리고 인생 한 조각

Home/법인칼럼/[사람과 법 이야기] 독도, 울릉도, 그리고 인생 한 조각

[사람과 법 이야기] 독도, 울릉도, 그리고 인생 한 조각

독도로 가는 뱃길 87.4㎞. 바다는 장판을 넓게 펴놓은 듯, 호수처럼 잔잔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남기지 않고 동해의 푸르름 속에 어우러졌다. 이번 5월의 봄날 한바다 여행은 여차여차한 일을 미루고 큰마음 먹었기에 가능했었다. 언제 독도를 가 볼까 싶었다. 하여 마음 내친김에 더 늦기 전 독도는 잘 있는지, 한 번 가 보자, 결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디론가 떠나려 할 때마다 늘 그러했듯,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막상 떠나려는 마지막 순간까지 발목 붙잡고, 뒷골 당기는 일로 소심한 두통을 앓았다. 이 처연한 봄날 한가운데에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친구의 격조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세속의 인연, 아픔에 연유한 죄스러움 때문에 마음 병이 도져 갈 길을 잃었다.

중환자실에서 코로나19 여파로 어렵게 연명하고 있지만, 내일이라도 곧 떠나갈지 모르는 그를 어찌해 주기엔 내가 좀 무력했다. 마지막 이별일 수도 있는 이 시기를 애써 외면, 도피하는 처사가 아닌지 기실 두려웠다. 울렁증에 괴로웠던 것은 뱃멀미 탓이 아니었다. 약하게 출렁이는 요람 같은 선실. 수면제 역할을 한 멀미약 덕분에 든 선잠 속에서나마 소년처럼 가녀린 친구의 작은 꿈을 읽는다. 우린 함께 노래 부르고 놀 카페를 열기로 했었지.

배는 독도의 동도 선착장에 객들을 예정한 대로 내려놓았다. 일기가 불순하면 독도행 여객선은 울릉도를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설령 출항했더라도 독도 근처의 파도가 여의치 않으면 접안 시설로 들어서지 못한다. 우리는 하늘이 허락해준 운을 얻은 셈이다.

30분도 채 못 되는 체류 시간. 남들 하듯 서둘러 이곳저곳 기념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출항의 뱃고동이 울렸다. 독도 바위섬, 숫돌 바위, 부채 바위, 독립문 바위, 한반도 바위에 영원한 흔적으로 남아 있을 법한 파도 조각들, 갈매기 날갯짓들, 언덕에 어우러진 햇무리, 그리고 살아 있었거나 살아 있기로 예정된 모든 것들. 이들과 짧은 만남을 그리워하기로 하면서 석별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여기에 친구의 꿈을 남겨 두는 일. 이것이 마지막 최선의 행동이었던 성싶다.

아쉽지만 국토의 동단 끝에 자리 잡은 이 섬에 잠시 발을 디뎠다는 것 자체를 친구도 큰 감회로 공감해줄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으로 도리를 했다는 인생 숙제를 마친 충만감. 그리고 독도명예주민증을 받아 숙제검사까지 다 한 구색도 갖추었음을 친구에게 전한다.

독도 탐방 이후에는 울릉도 나리분지를 찾았다. 화산섬인 울릉도는 외곽의 험한 산세로 위용을 자랑한다. 그런데 나리분지 초입 고개를 넘자마자 전망대에서 바라본, 놀라운 반전 풍경은 바로 현기증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종전 험악한 산세는 온데간데없어지고 판타지 영화 한 장면처럼 갑자기 화들짝 새로운 세상이 화사하게 열렸다. 숨겨진 천상 전원 봄 풍경이 천국처럼 아득하게 활짝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하, 이곳이 바로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나리분지로구나!

요정이 숨어 있을 법한 나리분지 원시림과 휘영청 들판을 해 질 녘까지 걸었다. 신령수 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족두리봉에 올라 하늘 한가운데 서 본다. 내가 요정 한 가지가 아닌가 싶어진다. 나리분지처럼 소담히 자리 잡은 예쁜 카페에 들러 한숨을 돌린다. 커피 향처럼 온후하신 카페 주인장의 배려 덕택에 그곳에서 길손이 하룻밤 머물 거처까지 얻었다.

아직 바람이 예사롭지 않게 거센 울릉도 5월의 밤이다. 북극성 밤하늘 어디엔가 친구가 꿈꾸었던 별이 있으리라 살펴본다. 하얀 눈이 내 키를 훌쩍 넘도록 쌓일 겨울, 이곳을 다시 찾아와 어쩌면 찬란할지도 모를 고립을 꿈꿔 본다. 바람처럼, 노래처럼 가버린 친구와 함께.

삶은 그렇게 연약하게 왔다가 지는가 보다. 그런 삶의 한 조각을 사랑으로 우연히 얻고, 그 사랑의 힘에 의지해 이 고해(苦海)를 건너간다. 오감, 육감을 다 동원하여 살면서 보고 느끼는 아름다움을 한껏 즐기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언젠가 저 어디로 나도 숙명처럼 떠나버릴 것이다. 그러기에 이 욕심은 다 이루기엔 미완성일 거다. 이런 불손한 예감 속에서 미련한 실존적 외로움을 느낀다. 아아, 이것을 삶의 비장미라고 했는가.

독도는 그래도 여전히 잘 있으리라 보고드리고 싶다.

[김상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