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미래를 어루만지는 선생님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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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미래를 어루만지는 선생님 메모

어느 지방 도시의 법원에서 필자가 담당했던 형사재판 이야기다.

중학교를 졸업한 일진 아이들이 여전히 학교 주변을 본거지로 삼아 맴돌면서 후배 학생들을 괴롭히고 행패를 부리는 일을 일삼았단다.

이들 범행의 꼬리가 잡혀 주동자급 몇 명이 구속돼 재판에 회부됐다. 재판 과정에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반성한다, 다시는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했다. 몇 차례 비행 전력으로 용서받았음에도, 또 이런 일 때문에 재판정에 선 그들이었다. 당면한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입에 발린 말 정도에 호락호락 넘어갈 것은 아니었다. 비록 아직 어리지만, 그들 속에서 뿌리를 뻗어가고 있을 잘못된 성향을 바로잡아 주려면 좀 더 따끔한 조치가 필요했다.

우선 앞서 있었던 일의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이들이 학교 주변 환경에 미친 폐단 전반에 관해, 학생 주임 선생님의 증언을 들어보고자 했다. 분명 이들 때문에 골치 아파했을 학생 주임 선생님 입을 통해 생생하게 괘씸한 행각의 전모를 확인하고 엄벌의 정당성도 찾아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이들 말썽꾼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단다. 그들도 자신들이 한 행동이 지나쳤음을 깨달았을까. 민망함을 넘어서는 두려움 때문인지, 눈물을 훔치는 아이도 보였다. 방청석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 부모들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증언을 마친 선생님은 엉거주춤 일어서려다 말고 “그런데, 판사님,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메모 쪽지들 몇 장을 꺼내 들고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메모를 작성해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전해준 이들은 바로 재판을 받는 아이들의 옛날 담임 선생님들이었다. 그 졸업생은 근본이 원래 바르고 착한 아이였는데, 이런 그릇된 일을 벌인 데에는 잘못 가르친 담임의 책임도 큰 터, 책임을 통감한다는 요지였다. 학생 주임이 아이들 재판 증인으로 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담임 선생님 저마다 서둘러 짧은 메모나마 아이들 앞날 걱정에 탄원 의견을 전한 것이다.

“아아~, 선생님은 어디서나 선생님이시군요….” 재판장은 잠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무엇 때문에 다음 말을 이어가기까지 잠시 속을 가라앉혀야 했다. 내 인생 위기의 선택 갈림길마다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스승들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부족한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선생님들의 마음 앞에 늘 몸 둘 바를 몰랐었는데. 그런데 아니, 이 아이들에게도 스승들이 여전히 계셨구나.

지난 주말은 스승의 날이었다. 필자도 부족한 강의를 한답시고 강단에 선 지 십 년이 넘었다. 그 틈에 어느새 제자들이 생겨 이런저런 인사 메일을 받았다. 일일이 답장하다가 스스로 마음을 정리해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다.

일전에 감명 깊게 본 부탄 영화 ‘교실 안의 야크’ 대사 중에 “선생은 (아이들) 미래를 어루만지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 사람의 인생은 사사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짧게 주어진 이 소중한 시간은 온 세상, 우주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의 앞날에 펼쳐질 우주를 돌보는 막중한 소명은 선생 말고도 앞으로 그를 참회·교화시켜 범죄를 다시 벌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판사의 몫이기도 했다.

그날 선생님들의 메모가 있었기에 어쩜 재판장도 아이들의 미래를 탐사하는 시간여행에 동참하기로 작정했던가 보다. 이어지는 재판 과정에서 여러 확인과 다짐, 재확인을 거쳐 결국 사회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옛 담임 선생님들의 제자들 미래에 대한 염원은 그래서 끝이 없어 보인다.

세월이 꽤 흘러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한 아이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였다.

“당시로선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재판만큼은 뜻한 대로 일이 풀려 정말 놀랐습니다. 아들은 도와주신 덕분에 이제 마음을 바로잡고 제대로 지내며 잘 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7일 필자의 칼럼 내용이 떠오른다. 삶에서의 실수도 때론 멋진 앞날의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 ‘하쿠나마타타(문제없어)’류의 지나친 낙관인지 두렵기는 하지만.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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