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밥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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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밥 먹는 법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우리 일행을 초청한 일본 측에서는 일과를 마친 후 융숭한 저녁 만찬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찾아간 식당은 도쿄의 한 유명한 털게 전문점.

필자는 바닷게, 특히 간장게장 애호가였다. 매일같이 게장을 줄을 대 놓고 먹었다. 게딱지에 김, 참기름을 투하하고 달걀까지 넣어 밥을 비벼 먹는 ‘밥심’ 아침은 행복 그 자체였지. 그러다가 급기야 크게 속탈이 난 일이 있다. 이후로 면역 이상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식탐을 낸 벌로 갑각류 알레르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영덕대게를 잘못 먹었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119로 응급실까지 실려 가는 임사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특히 외국 여행 중에는 먹는 것으로 무리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다만 초대한 분들의 성의를 생각하니 식사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티를 내지 않고 가려 먹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해 보자고 작정했지만, 희망과는 달리 연이어 나오는 음식들은 죄다 군침 도는 통통한 털게뿐. 식사에 거의 손도 못 대고 말았다. ‘눈칫밥’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군. 급기야 필자의 개인 사정을 들켜버리고는 서로 당황해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방송물이 인기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일상생활상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 준다는 데 시청의 묘미가 있는 듯도 하다. 한 방송물에서는 채식주의자 여성과 글루텐 불내증(밀가루류 속에 포함된 단백질인 글루텐으로 인한 예민 반응) 남성 커플이 서울의 식당을 찾는 고충을 담고 있다. 육류를 못 먹는 사람과 밀가루를 못 먹는 사람이라. 도대체 같이 어디서 뭘 먹을 수 있지? ‘밥 정(情)’이라는 것은 ‘한솥밥’ 먹는 데서 싹트는 것인데 이들은 잘 풀릴 수 있을까? 우리식 사고방식으로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커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 선진국 기준으로 볼 때 한국에서도 이름난 식당이라면 그 메뉴 속에 체질에 맞추어 관용과 배려를 포함한 식단을 마련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비단 종교적 이유는 아니라 하더라도 체질이나 신념, 기호에 따라 우리가 통상 행복한 먹거리로 생각했던 것들이 그 누군가에게는 고통이자 배신이고 생명, 건강의 위협일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보도에 따르자면, 며칠 전 인권위원회는 병설 유치원의 ‘매운 급식’이 아동 인권 침해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획일적인 매운 급식을 강요하는 것은 아동 개인의 편차를 무시하여 취약한 아이에 대한 폭력이라는 주장이 진정의 요지. 인권위는 매움을 객관적인 하나의 기준으로 설정할 수 없고 당국의 급식 개선 노력 등을 들어 진정을 기각했단다. 진정이나 인권위 결정의 당부는 결국 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처음 이 보도를 접하면서 아니 이게 왜 인권 문제지 하고 궁금해할 수 있다. 밥 먹는 일, 밥 먹이는 일은 확실히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법의 영역에 속하게 됐다. 40여 년 전 국민을 업신여기는 오만불손했던 정권이 기세등등했던 시절. 삼청교육대에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 배고픈 굴종 속에서 식사를 단 10초에 끝내야 했고 때론 오물까지 강제로 먹어야 했던 인권 유린 이야기를 듣게 될 때 느끼는 아픔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지금은 특히 단체 급식에 관한 여러 고민거리가 인권과 연결지어 논쟁이 진행 중이다.

매운 것 먹는 일의 기준까지도 문제가 되어 법의 판단을 받는다니! 다양한 생각의 기회를 두루 열고 있는 배려는 국가의 품격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우리가 소중히 지켜야 할 나라다.

못 먹고 못살 때를 지나니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이나 윗분이 가자면 그저 따라가서 먹는 때는 지났다. 먹는 이의 개성과 취향, 기호를 존중하는 시대로 이미 들어왔다. 심지어 동참을 강요하지 않는 것도 배려의 일환이 됐다. 이 시대의 진정한 윗분으로 자처하고 인정받고 싶다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리라.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라는 속담이 있다. 밥 먹을 때는 누구도 각자 존중받아야 하는 법이다. 이 속담의 현대판 풀이이자, ‘찬밥, 더운밥 가릴 것 없이’ 현대 한국을 사는 사람들의 ‘밥 먹는 법’일 수 있겠다. 그래도 “얘들아, 편식은 안 돼요”라는 정도의 말은 해주고 싶다.

[김상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