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배심원들을 만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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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배심원들을 만나기까지

우리나라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1월 1일 시작된 한국형 배심재판 제도다. 첫 재판은 그해 2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 제도의 도입은 2003년 출범한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의 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이 위원회는 `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하는 방안`을 사법개혁 과제 중 하나로 삼고 논의를 시작했다.

필자는 여기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해 배심 제도를 포함한 형사재판 제도 전반에 걸친 개혁 과제를 실천에 옮기는 준비 작업을 담당한 바 있다. 필자는 1990년대부터 미국 등 외국의 배심 제도에 대해 실천적 연구를 했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법정에 들어가 직접 배심재판을 참관하면서 제도가 실제 운영되는 상황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운이 좋아서였는지 재판장의 배려로 일주일에 걸쳐 진행된 미국 배심재판을 법대 위에서 체험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이후 이 분야 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자, 실무가들과 교분을 쌓았다. 배심재판은 한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 정도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다 보면 이 제도와 그 옹호론자들은 때론 극심한 핍박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시민과 전문가 간 소통과 조화 속에서만이 `사람이 중심이 된 재판의 미학`이 완성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이들과의 눈물겨운 만남의 장은 이 연구에 직업적 인생을 걸어볼 만한 존재 근거가 됐다.

마침 연구 성과가 일부 마무리돼 2002년 말 대법원 사법제도비교연구회에서 발표했다. 나중에 `미국 배심재판 제도의 연구`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정리됐다. 골자는 미국 배심 제도를 소개하는 것이었지만, 깔린 의도는 우리도 이제는 이 제도를 시행해 볼 수 있다는 소견을 피력하고자함에 있었다. 21세기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 시민으로서 그 의식과 역량이 능히 재판의 한 부분을 맡기에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는 법원 역시 이 제도를 감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도 좋겠다는 취지에서였다.

배심 제도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한 나머지, 이 제도에 대한 연구는 아예 언감생심, 거의 전무했던 것이 당시 판사 사회를 포함한 법조계 분위기였다. 인민재판의 악몽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이 사회적으로도 용납될 것인지 검증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 때문에 배심 제도를 도입하자는 위험한 주장, 그것도 현직 판사가 이런 얼빠진 주장을 하는 것은 직업을 버릴 각오를 한 것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정신 나간 짓으로 치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늦은 밤까지 이어진 대법원 청사 16층의 발표회 석상은 신선한 논란의 도가니 속에서 꽤 진지하게 진행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막연한 구호, 주장보다는 구체적 경험담, 콘텐츠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이것이 하나의 작은 모티브가 됐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논란이 이어진 끝에, 참여정부가 들어오면서부터 배심 제도 도입은 주요한 사법개혁 과제로 등장했다. 풀뿌리 민주주의 이상의 실현에는 사법부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법원의 두꺼운 장막을 걷고 보다 더 투명한 사법과 재판의 운영이 절실한 시점이 됐다. 국민의 사법 참여는 할지 말지의 문제 차원을 벗어났다. 참여하는 시민과 배심원에게 재판 권한을 어느 정도로 감당하게 할 것인지가 더 큰 문제였다. 필자는 보다 더 선명한 제도의 성안을 바라는 최전선 연구자였기에 이런 연고로 이 사법개혁 과제 실무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제도 논의 초입에서부터 법률 시행에 이르는 데 5년, 그리고 실제 배심재판이 현장에서 이뤄진 지 11년. 꼬박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제도가 갖는 마력은 한낱 연구자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의 인생도 소용돌이칠 정도로 바꿔 놓았다. 그사이 우리는 무엇을 이뤘고, 이루고자 한 그 무엇을 아직 이루지 못했는지 되돌아본다. 소년은 이제 쉬 늙어 버렸으나 공부의 길은 완성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험난하다. 그래도 시민과 함께하는 재판, 진지한 눈빛의 배심원들을 지금 만날 수 있으니 그로써 할 일 중 일부는 했다는 소회에 젖는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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