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베트남 신부의 마지막 편지와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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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베트남 신부의 마지막 편지와 판결문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베트남 말로 된 한 통의 편지는 이렇게 운을 뗐다.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신부 후안마이는 이 편지를 남편에게 남겼다. 결혼 생활은 고작 한 달 남짓. 40대 노총각인 남편과는 언어 소통이 어려웠다.

집 안에만 하루 종일 갇혀 지내는 자신의 심경을 담담하게 피력했다. “저는 당신이 일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것을 먹었는지, 건강은 어떤지 또는 잠은 잘 잤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제가 당신을 기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도록, 당신이 저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기를 바랐지만, 당신은 오히려 제가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편지는 이승에서 살아서 쓴 그녀의 마지막 편지가 되고 말았다. 후안마이는 그날 밤 만취해 늦게 귀가한 남편의 무참한 가정 폭력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베트남어를 읽을 줄 모르는 남편은 그녀의 진심이 담긴 편지 내용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필자는 남편에 대한 살인 사건 재판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이 편지를 접했다. 편지는 현장에서 발견돼 사건 기록에 편철돼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삶과 혼인의 본질을 차분하게 깨우쳐주는 어른스러운 글 마디마디 때문에 자괴감과 슬픔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고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고 있어요. 좋으면 결혼하고 안 좋으면 이혼을 말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제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이 어리지만, 결혼에 대한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어요. 한 사람이 가정을 이뤘을 때 누구든지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해해야 돼요. 하지만 부부가 행복할 수 없고 위험하게 만드는 일을 계속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이 사건의 근저는 다문화가정을 꾸린 여성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맹점과도 맥이 닿아 있다. 그녀는 갔지만 편지만이라도 사건 기록에 묻혀 잊히지 않도록 해 장래의 경종과 교훈으로 삼고 싶었다. 영구보존 공문서인 판결문에 이 편지 전문을 옮겨 그 뜻을 고스란히 살리는 것으로써 그 영혼에 대한 위무와 속죄를 대신하고자 했다.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 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는 남녀를 그저 한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혼인은 사랑의 결실로 소중히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그 가치를 온전히 지켜낼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땅의 아내가 되고자 한국을 찾아온 피해자 후안마이. 그녀의 예쁜 소망을 지켜줄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는 없었던 것일까. 19세 후안마이의 편지는 오히려 더 어른스럽고 그래서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이 판결 이후 예상치 못한 반응을 접했다. 한 매체에 판결 내용이 소개되면서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까지 보도가 됐던 모양이다. 일본인 지인이 굳이 연락을 해 왔다. 판결문에 이런 공식 사죄를 선선히 하는 데 문제가 없느냐는 걱정을 전했다. 일본 사람의 관념으로는 선뜻 상상하기 어렵다는 말에 공연한 일을 벌였나 의기소침해졌다. 하지만 그 주변의 일본인들은 한국 판결이 보여준 양심과 용기에 감탄하고 있다는 말에 본의 아닌 위안을 얻었다.

사죄 없는 일본 집권층에 대한 경계심과 극일 의지가 어느 때보다 드높다. 상대방은 옹졸해서 못하지만 이웃과 평화롭고 통 큰 공존을 해내는 일도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어 이기는 방법 중 하나다. 한 나라의 위대성은 이민족이든, 소수자든, 다양한 여러 사람과 두루 더불어 잘살 수 있는 배려와 관용의 정신이 충만할 때 더욱 빛이 날 것이다. 착한 사람들이 사는 좋은 나라, 휴머니즘이 충만한, 존경받는 강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우리의 부족함은 없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10년 전 썼던 후안마이 판결문을 다시 찾아본 소회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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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08/635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