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보호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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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보호자 이야기

팔순노모 잦아지는 병원치료
`내가 보호자라니` 생각에 자탄

보호자 제도, 법적 난제 많아
응급환자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누구 대상으로 동의받을까
서면동의 효력 두고 갈등 빚기도
보호자 문제로 법정다툼까지
법률전문가로서 직업병일까

 

올해 어머니가 팔순 중반을 넘기셨다. 목청이 맑기에 아직 건강하시지만, 이제는 이런저런 일로 병원에 다니시는 날이 많아졌다. 어머니의 잦아지는 병원 치료 어간에 아들은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됐다. 하얀 눈이 두껍게 깔린 어느 날, 어머니를 부축해 병원 정문을 나서면서 다음 예약된 병원 진료일에는 반드시 보호자인 아들도 같이 와야 한다는 전갈을 받았다. 지금껏 어머니의 그늘 속에서 의탁해 살아왔다고 생각한 아들로서는 `아니 내가 어머니의 보호자라니?`라고 하는 자각이 꽤 새삼스러웠다.

병을 고치고 낳게 하는 병원 치료 중에는 치료 과정에서 오히려 환자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상황도 당연히 포함될 수 있다. 의료법에서는 이 경우 환자에게 그와 같은 위험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함을 정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의료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도 설명을 통해 치료 내용과 위험성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연후에나 스스로 치료를 받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기에 그런 당연한 이치를 법으로까지 정한 것이다. 이 기회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 채 문제가 발생하면 의료분쟁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부딪치는 여러 녹록지 못한 비상 상황에서 이 설명과 동의는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여기에 여러 법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치명적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응급 환자를 소생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를 상대로 그 설명과 동의를 받아야 할까. 치료 시작 시점에서는 정신이 말짱했지만, 전신 수면 마취에 들어가 한창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데 환자에게 애당초 예상치 못한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찌할 것인지. 이때 특별한 조치가 필요함에도 설명과 동의를 위해 마취가 깰 때를 기다려야 한다면 말도 아닐 것이다.

이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의료법에서는 예외를 두고 있다. 법정대리인이 대신 설명을 듣고 동의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관행적 의료 현장에서는 흔히 보호자 동의가 빈번하게 활용되는 듯하다. 이 경우에도 누구를 보호자로 볼 것인지, 때론 동의해줄 보호자조차 없다면 이때는 또 어찌할 것인지를 두고 꽤나 막연한 논란이 있어 보인다. 서면 동의에 형식적으로 서명한 뒤 나중에 그 동의의 효력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보호자 관련 분쟁은 비단 의료 영역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 일상사에서도 보호자의 문제 때문에 법정 다툼으로 비화되는 일이 왕왕 있다. 식당에서 청소년에게 술을 팔거나 유해업소에 청소년을 들이면 업주는 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지만 보호자가 그 자리에 동석하면 예외가 되는 일도 있다. 보호자가 아버지라면 몰라도 갓 미성년을 넘긴 21세 형이 동석했다면 어찌 볼 것인지. 나아가 그 형이 친형이 아니고 그냥 `동네 형`이라면 그를 보호자로 볼 수 있을 것인지.

과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보호자란 (중략) 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계도할 수 있는 정도의 의사와 능력을 갖춘 자`를 뜻한다. 보호자 자격을 갖췄는지는 `청소년과 보호자의 의사, 청소년과 그를 동행한 보호자의 각 연령, 그들 사이의 관계, 출입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이 판례에서 말하는 지침은 법 위반을 판정하는 판사나 관계당국에 대한 것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청소년을 들일지 말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업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기준이어야 한다. 법을 위반하면 벌금을 물고 가게 문을 당분간 닫아야 하는 일반인 업주에게 이 `객관적 판정 기준`을 조목조목 따져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회색지대의 공백이 너무나 크다. 그리하여 인터넷에 이 문제 때문에 종종 등장하는 현장의 여건은 그리 편치 못해 보인다.

`아니 내가 보호자라니!`라는 자탄 속에는 법적으로 이러저러한 혼란스러운 단상이 섞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 역시 법률전문가가 늘 가진 직업병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보호자로 지명된 아들로서는 내게 생명을 주신 어머니의 생명을 이제는 내 손으로 보듬고 지켜드려야 하는 사명이 다음 순서로 주어졌음을 깨닫는다. 이 겨울을 나면서 느낀 보호자 이야기의 한 단상이다. 어머니의 건강 회복을 기원한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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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1/02/193558/?sc=30500236&_ga=2.227683028.810184149.1617595505-736219786.1611195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