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사법신뢰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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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사법신뢰와 언론

지금부터 20년 전인 1999년, 미국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미국 50개 주에 산재한 지역 법원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 조사를 벌인 일이 있었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자면 미국 시민들의 지역 법원에 대한 신뢰도 수준은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기관 순서로 보면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높은 것(매우 신뢰한다는 응답은 45%)으로 나왔고 이어서 지역 경찰(43%), 미국 연방 대법원(32%) 순이었다. 지역 사회에 소재한 법원에 대한 신뢰도는 고작 23%에 불과했다.

당시 이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미국 전역의 주 법원 법원장 등 관계자들이 모였다. 법원의 신뢰도 수준이 여타 기관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을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는 후문이다. 이 회의에서는 우려스러운 낮은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법원의 권위는 법원을 이용하는 시민들로부터의 지지가 유일한 근거다. 시민의 지지와 신뢰 없는 법원은 사상누각의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실행계획을 면밀하게 세우게 된다.

신뢰가 그처럼 낮은 근본 원인으로는 시민들이 법원 일을 잘 모른다는 점이 지적됐다. 판결에 대한 언론의 단편적·부정적 보도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불신감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걱정거리였다. 그래서 법원은 사법행정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법원을 홍보할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법원은 시민들과의 단절을 뛰어넘어 사람들 생활과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소통과 개방의 자세를 가져야 했다. 일선 지역 법원의 한정된 인적·물적 자원만을 가지고 이 문제를 능히 대처할 수 없었기에, 전국적 차원에서 사법정책연구기관이 이런 대책 수립을 위한 지원 시스템도 마련했다.

이런 대책은 대체로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주 법원 사법정책연구원(National Center for State Courts)은 정기적으로 법원 신뢰도 조사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해 왔다. 매년 신뢰도 지수는 올라가는 추세였는데, 가장 최근인 2018년에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주 법원에 대한 신뢰도는 76%로 올라갔다는 결과도 발표됐다. 다만 `판사들이 공동체의 가치를 반영하여 재판 당사자가 직면한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절반에 못 미치는 43%의 응답자만이 동의를 했단다. 이 점은 앞으로 개선을 위한 일거리가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한때 법원에 몸담았던 필자로서는 이런 외국 사정을 접하면서 아쉽고 부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는 법원 소식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순식간에 쌓여서 달리는 댓글 상황은 마음 아픈 수준을 넘어서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버린다. 무한 불신의 소용돌이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법원의 처지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하고 있다. 그 시절 사법 신뢰 구축을 위한 외국의 노력을 연구과제로 삼고 고심했던 것도 무색해진 채, 이제는 깊은 자괴감에 빠져든다. 극명한 진영 논리의 끝없는 대립 속에서 타협할 여지가 없는 전쟁터는 법정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재판을 하더라도 반대 이해관계자들은 법원과 판사에 대한 성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게다가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법원 자체가 소위 사법농단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제자리를 잡기에는 요원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위안거리는 남아 있다. 아무리 해도 법원만이 자신의 분쟁을 호소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기대가 그것이다. 그리고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묵묵하게 재판을 해내고 있는 공직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변호사가 된 뒤 분쟁의 현장에서 여전히 느끼는 실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를 잃어버릴 일은 아닌 듯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의 희망을 생각해보는 이 시점. 시민의 지지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원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소식을 전하는 언론 보도에서 중요한 사회적 자원 중 하나인 사법 신뢰를 되찾고자 하는 것은 과한 욕심은 아닌지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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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12/1046698/?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