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삶의 감칠맛, 앗!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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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삶의 감칠맛, 앗! 실수

20년 전 단독 재판장 때 일이다
미성년 나이를 갓 넘긴 젊은이
“반성은 판사님 앞서 하는 말뿐
모두 저마다 빠져나갈 궁리만
다시는 이곳에 오기 싫습니다”
누가 재판받는지 낯뜨거웠다

살면서 피하고 싶은 것이 실수
그래도 살다 보니 실수 저질러
이것도 기억에 잘 섞여들면
삶의 감칠맛 더 깊어질 수도

 

판결 선고를 막 하려다 마지막 확답을 받고 싶었다. 그의 실수를 오늘 관용으로 씻어주면 앞날을 사는 밑거름, 힘이 되리라.

“이번에 구속까지 돼서 처음 재판받아보니 어떤 느낌이 드나요?”

“판사님! 다시는 이곳에 와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호라, 형사 사법이 작동하긴 하는구나. 미성년 나이를 갓 넘겼지만 그래도 똑 부러지게 자기 말로 반성의 빛을 보이는 젊은이가 기특했다. 이런 아이들이 있기에 판사 일도 할 만하겠네 싶었다. 야무진 다짐의 이유도 더 말해보렴.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하게 됐나요?”

“판사님! 이곳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닙니다. 나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판사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반성은 판사님 앞에서 하는 말뿐이지, 모두 저마다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거짓말쟁이들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곳에 오기 싫습니다.”

어라, 뭣이라고. 정말 너 입 있다고 끝까지…. 잠시 머리가 띵해져서 할 말을 잃었다. 누가 재판을 받는 건지 낯이 뜨거웠다. 20여 년 전 필자가 형사 단독 재판장 일을 할 때 법정에서의 `앗! 실수` 회고담 중 하나다.

일전에 친구의 후배분을 만난 일이 있다. 지금은 열심히 살다 보니 일도 잘 풀려 회사에서 꽤 높은 지위까지 올랐다. 수년 전 실수로 재판을 받고 실형을 복역한 다음, 사회에 나와 재기한 결과란다. 다만 그 재판은 아주 많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사가 실수했노라고, 짧은 탄식과 푸념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옥에 갇히지 않았더라면 인생이 크게 망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전의 실수투성이 삶이 실수와도 같은 재판으로 적시에 중지됐기에, 오늘이 있게 됐다는 것이다. 남들이 학교 갔다 왔다고 하던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었다. 고장 난 시계도 한 바퀴 돌다 보면 한 번은 맞아들 터, 그때부터 운이 좋아 시계가 제대로 맞춰 돌아준 셈이다.

살면서 피하고 싶은 것이 실수지만, 그래도 살다 보니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하지만 그 실수의 맛깔도 때론 양념처럼 기억에 잘 섞여 들다 보면 삶의 감칠맛은 더 깊어질 수 있겠다. 지난 주말 한 방송국에서 방영한 알 파치노 주연 영화 `여인의 향기`를 다시 보다가 든 생각이다.

주인공이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젊은 여성과 탱고를 추는 장면은 강렬한 춤곡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간발의 차이)`와 함께 뇌리에 박힐 명장면으로 꼽힌다. 사람들 앞에서 춤 실수할까봐 꺼리는 여성에게 이를 권하는 부분에서 알 파치노가 하는 말도 길이 회자되는 명대사로 남았다.

“탱고에는 실수란 없어요. 인생과는 다르죠(No mistakes in the tango, not like life). 단순합니다. 실수 때문에 탱고는 더 위대해지죠. 실수로 스텝이 꼬이는 것, 그게 바로 탱고예요.”

인생은 정말 탱고와 다를까. 이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면 `아니요`라는 대답이 정답임을 알게 된다.

주인공이 앞서 한 말 중에 스텝이 꼬여 실수로 망친 인생이지만, 때론 나중에 위대해질 수 있음이 반어적으로 숨겨져 있다. 이 숨은 말 찾기를 하는 데 이 인생 영화를 보는 맛이 있다.

예전에 어느 열정적인 형사 법정에 다녀온 일이 있다. 재판장은 `실수한 이유를 스스로 설명할 줄 알아야, 다시 재범의 실수를 범치 않을 텐데` 하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할 말을 잃은 피고인 대신 변호인이 주변머리 없는 답변을 해 보았다.

“사람의 실수는 때론 왜 그랬는지 논리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우리 삶이 불합리한 맥락으로 꼬이다 보면 늘 그런 것이니까요. 재판장님께서도 다 이해하시겠지만….”

속 깊은 재판장은 이 말에 빙그레 웃음으로 화답해주셨다.

입바르지만 속이 꽉 찬 청년이군. 심호흡하고 준비된 판결문으로 집행유예, 석방 선고문을 낭독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법정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든든해 보였다. 이제 그도 그 나이만큼 된 아이를 둘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어쩌면 그도 자신의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줄지도 모른다.

“착한 사람들만 사는 세상에도 실수란 얼마든지 있단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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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1/03/291453/?sc=30500236&_ga=2.228282068.810184149.1617595505-736219786.1611195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