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소외된 사람들의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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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소외된 사람들의 법정

2022년 새해 설 명절, 사람들과 코로나19의 만남은 여전히 꽤 수상쩍다. 무슨 경제공황, 위기라도 온 듯이 금융시장은 대폭락하고 가뜩이나 좁아진 마음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들과 삶의 한줄기를 같이 이어나가야 함은 숙명일지니. 하여 만남의 스치는 짜릿한 손마디가 특별히 그리워지는 시절을 절감한다. 이런 아뜩한 느낌 또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설 명절 연휴가 오기를 기다리는 심산을 잘 설명하는 대목일 수 있겠다.

이런저런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어렵사리 모였다. 소주 몇 순배가 돌다 보니 다들 얼큰한 취기가 몰려온다. 사람들 이야기가 세상사 푸념으로 변하면서 때론 과격해지는 것도 다반사다. 변호사 일을 하는 필자가 끼어 있음을 의식한 것일까. 명절 연휴를 앞두고 쏟아져나온 시정의 재판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다들 불만이 이만저만하지 않은지 성토가 이어졌다. 어떤 판결도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탐탁지 않았다. 요즘 재판에는 정치적 함의가 심하게 부여되곤 하여, 입장 차이로 늘 반대파가 생기기 마련인가 보다.

다들 어쩜 그리 오지랖이 넓은지. 자신과는 무관한, 남의 일이건만, 소상히 사건 내용이며 판결 논지를 알고 있는 눈치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여기에 세상살이에 한두 번씩은 송사에 휘말려 고생을 해본 경험담까지 더해진다. 그 담론의 깊이는 법률 전문가들의 세미나 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그 자리에서 나온 한 제안은 좀 과한 듯싶었지만, 좌중의 지지를 얻은 면도 있었다. 이럴 거라면 재판은 인공지능(AI)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다. 이유는 이해할 수 없는 고무줄 판결을 일삼는 현장의 판사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반드시 그것만이 능사일 수는 없을 텐데. 낯 뜨거워 이런 생각을 불쑥 꺼내지 못한 필자는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었다.

AI 판사라니. 잠시 흥청대던 저녁 거리가 밤 9시를 지나 고요에 빠질 무렵,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다시 외롭기 그지없다. AI 판사 앞에서 재판을 받는다면 법정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을까. 사람이 사라진 빈 법대 위에 인공지능을 구사하는 컴퓨터 모니터를 올려놓을까. 아니면 홀로그램이나마 가상의 판사들을 앉히게 할까. 그렇다면 그 판사들의 얼굴은 또 어떻게 그릴 것인지 상상해본다.

성년이 되자 보육원을 나와 갈 곳이 없어진 어느 청년 사건 재판이 생각났다. 병역 기피 문제까지 겹치면서 삶의 의지를 지켜줄 등불조차 거의 꺼져 갈 무렵. 길거리를 헤매다가 배가 고파 강도질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었다. 양형 기준에 따른 형량의 크기는 명확했건만, 판사는 양형 기준 규범을 어기기로 마음먹었다. 선한 세상의 순수함을 더럽힌 죄는 지금껏 구속된 기간으로 응징했다고 보기로 했다. 남은 일은, 그가 세상 속으로 나와 선하게 살아갈 힘을 더해주는 것이었다. 형벌을 여기에 더해 추가로 옥에 가두는 것은 그에게도, 또 세상의 선함을 도모하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법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법이다.

반역하는 판사의 탄식과 눈물. 누구는 그 재판은 실수였노라고 나무랄 것이다. 또 누구는 법 속에 숨겨진 인간 문제를 탐색한 재판으로 이해하고 싶을 것이다. AI에 실수를 범했다고 비난을 살 수도 있는 이 모든 과업을 맡기려면 꽤 많은 알고리즘을 깔아야겠군…. 달리는 차창 밖의 한강변 가로등 불빛이 아롱거리며 번져와 잠시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작년 3월 27일자 필자의 칼럼 ‘삶의 감칠맛, 앗! 실수’에서 거론한 ‘어느 열정적인 형사 법정’ 재판이 근 1년간의 심리를 마무리하고 판결까지 받게 됐다. 속 깊은 재판장은 실수의 원인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었다. 실수담 속에 얽힌 그 재판은 그래서 한 인간의 삶을, 그리고 그런 법정의 재판을 한 사람까지도 위대하게 만들 수 있겠다.

미래 재판에는 AI가 많이 도입될 듯싶다. 하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부 재판에는 사람이 여전히 필요하리라 믿는다. 법원에 “소외된 자들이여” 운운의 간판이 걸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올해 날이 좀 따뜻해지면 다시 그 친구들을 만날 것이다. 이번에는 소외된 인간을 위한 법정 이야기를 들려줄 작정이다. 친구들 속이 좀 풀렸으면 좋겠다.

[김상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