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언택트 시대, 재판정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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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언택트 시대, 재판정의 의미를 묻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네 삶의 모습은 이래저래 변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감염병이 사람들 사이의 접촉을 매개로 전파될 것이라는 걱정이 그 변화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하여 소모적인 회합과 방문 대신 효율적이면서도 간편한 인적 교류 방식은 무엇인지 모색해 볼 때가 됐다. 그 때문에 비대면이라는 말이 이 시점에서 하나의 사회적 화두가 된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종전과 같은 인간관계의 교류 방식도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근본에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한편으로 글로벌 팬데믹 공포와 위험 앞에서 체계적이면서도 정확한 정보 공유가 필요한 터다.

여기에 여러 분야에서 좀 더 편리한 의사소통의 채널을 확보할 것도 요망된다. 만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충분한 정보를 교류한다는 딜레마에 우리는 잘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기실 인간관계는 직접 만남과 교감 속에서 디테일이 풍성해진다고 우리는 배웠다. 밥 한번 같이 먹고 술 한잔 같이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온기를 느끼는 데 더 익숙했다. 앞으로 변화의 시대 속에서 살아갈 새로운 세대들은 이 과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건조한 디지털 세상 속에서 익명성에 의존한 무관심을 극복하고 어떻게 인간다운 배려를 끌어낼 것인지도 생각해 볼 거리다.

한편 만나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의 숨은 마음을 읽어내고 생각을 공유하는 방식도 변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여기에도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야 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비대면 사회의 도래에 즈음하여 법률생활과 제도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경제적 거래가 온라인과 디지털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도 더 빈번하게 될 수 있음이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로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다분해 보인다. 이에 걸맞게 재판제도를 포함한 법제도에 관해서도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하게 주목할 바는 우리 재판제도가 지난 10여 년 사이에 비대면에서 오히려 대면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이다. 산적한 사건 앞에서 효율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서류 검토 중심의 형식적 재판을 해 온 것에 대한 반성이 그 배경에 깔려 있었다. 판사가 법정에서 사람을 대면하고 말을 직접 들어보는 과정에서 진실의 뉘앙스를 가릴 수 있다는 생각이 강조된 것이다.

참말과 거짓말을 가려보는 일이 재판의 요체다. 그런데 사람의 거짓말을 분간하기 위해서는 표현된 말 그 자체만을 가지고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이것이 그간의 이 분야 연구성과 중 하나다. 여기에 더하여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태도, 몸가짐 등의 비언어적 요소들까지 입체적으로 느껴볼 필요가 있다.

의사소통에는 말 말고도 표정과 몸짓을 포함하여 숨어 있는 다양한 채널이 포진해 있다. 행간을 읽고 말 속에 숨어 있는 뼈마디를 찾는 일. 이를 소홀히 하게 되면 예상치 못한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어` 다르고 `아` 다른 말을 잘 가리지 못하면 때에 따라서는 눈치 없는 무례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꼭 말을 하지 않더라도 염화시중의 미소 속에서 지혜의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사람을 직접 대면하고 그 말이 전하는 뉘앙스를 오감, 육감을 총동원하여 주의 깊게 새겨서 느껴보아야 말하는 사람의 속뜻을 다 알 수 있다. 특히나 진실을 가리는 재판 과정에서 판사가 말하고 있는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일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언택트가 보편화하는 시대에서도 대면 진실 발견이라는 재판 시스템은 이 대목에서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계속 강조되리라고 본다. 하지만 미래를 전망해 볼 때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재판제도에 적절하게 접목해야 하는 때가 곧 올 것으로 전망한다. 디지털 비대면 세상의 도래를 앞두고 새로운 사법제도 고안에 대한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언젠가는 대면치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속 거짓까지 읽어내는 기술이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함을 느낀다. 그 경지를 우리는 디스토피아라고 부를 것인가.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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