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역사의 기억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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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역사의 기억을 걷는다

걷는다는 행위는 신성한 몸의 원초적 축복이다. 몸이 살아 있기에 다리로 서 있는 것이다. 생각이 서 있기에 걷다 보면 무언가를 새롭게 만나게 된다. 길을 걷다 보면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새삼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자동차로 무심히 지나쳤던 거리 풍경도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미처 못 보고 놓쳤던 볼거리, 생각 거리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한다. 두리번거리는 일은 그래서 신선한 감각적 체험을 위해 해봄 직한 준비 동작이다.

일전 어느 주말에 지인들과 남산 둘레길을 걸었다. 남산 타워에서 케이블카로 내려와 명동에서 필동 쪽으로 넘어가려다 생각지도 않게 마주친 곳이 바로 ‘통감관저 터’다. 이 터는 현재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서울유스호스텔로 향하는 언덕에 잔디밭 공터로 남아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들러보아야지 어림만 했을 뿐이었는데, 이처럼 의도치 않게 이 장소에 당도할 수 있었던 것도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고 하겠다.

통감부는 일제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으면서 그 이듬해 이곳에 설치됐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조약을 고종 황제에게 무력시위로 강요했고, 초대 통감으로 취임한다. 제국주의 일본은 이를 통해 장차 조선을 병탄할 야욕을 야금야금 실천에 옮겼다. 경술국치로 국권을 빼앗은 이후 본격적인 식민지 통치기구로 자리를 잡았다. 1907년 통감부 신청사를 건립하자 이곳은 우두머리 통감이 거처하는 관저로 전환됐다. 마침내 1910년 8월, 이 건물 2층에서 ‘경술국치조약’이 체결되는 슬픈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일제의 식민통치 동안 이 관저는 식민통치자 통감, 총독들의 본거지로 활용됐다.

해방 이후 이 건물은 박물관 등의 용도로 사용되다가 중앙정보부가 그 부근에 들어서면서 철거되어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졌다. 그러던 중 2005년에 들어와 뒤늦게 이 터의 위치가 확인됐고, 20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하여 이곳이 국치의 현장이었음을 알려주는 표석을 세우게 됐다고 한다.

늦겨울 맑은 오후의 햇볕은 그런대로 따스할 법도 했건만, 남산골을 휘감는 바람결로 마음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을사늑약 체결 직후 을사오적의 처벌을 상소하다 연달아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 의정대신(총리대신) 조병세, 1907년 헤이그평화회의에서 일제의 만행을 피를 토해 규탄한 헤이그 특사 이상설, 이위종, 이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열사 등 순국선열의 충정이 칼바람으로 마음에 사무친다.

특히 바로 그 옆 2016년 8월에 조성된 일본군’위안부’ 기억의 터에 새겨진 글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에 치밀어오르는 결기를 느낀다. 이 현장을 말없이 지켜온 겨울나무는 외롭지만 그대로 버티고 있구나.

이곳에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생경한 구조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거꾸로 세운 동상’이었다. 이 동상은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일부를 거꾸로 땅에 처박아 놓은 것이다. ‘하야시 곤스케’는 1899년 주한 공사로 부임하여 7년간 한국에서 재직하면서 일제의 한국 침략을 실행한 원흉이었다. 그는 일제 본국의 야욕을 숨긴 채 한국 조정을 드나들고 한국 관리들과 교섭하면서 간교한 거짓 외교술책을 벌여 ‘한일의정서’, 을사늑약을 성사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는 이 공로로 1906년 남작 작위를 받았고, 1936년에 이르러 그의 업적을 기념하는 동상을 이곳에 세웠다는 것이다. 동상은 파손됐지만, 동상 좌대 판석의 잔해가 남아 있었기에 서울시는 이를 모아 표석을 만들고, 이 치욕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의미로 그 표석을 거꾸로 설치하여 일반에 공개했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느끼고 생각하고 말할 거리가 많았던 이 역사 탐방의 길 걷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삼일절 징검다리 휴일을 앞둔 이번 주말. 길을 나서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건물 터 바로 아래, 남산예장공원에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독립투사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에도 공부할 거리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걷기에 점점 더 좋은 봄날이 오고 있다.

[김상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