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연말 소망, ‘나’는 그래도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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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연말 소망, ‘나’는 그래도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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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저녁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 이로써 대법원은 대법관 공석을 모두 채우고 2019년 새해, 온전하게 업무를 수행할 태세를 갖추게 됐다. 사법부 최악의 위기 속에서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 새해 대법원이 정상화되어 지혜로운 재판을 해 줄 것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어려움 속에서 새롭게 임명된 김상환 대법관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한다.

한 분의 대법관이 탄생하는 데에는 산고의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산고의 와중에는 분명,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 또 다른 많은 예비후보자 군에 속하는 이들의 좌절과 탄식도 함께 섞여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약 이십 년 전 고등법원 배석판사 시절의 일이다. 대법관 몇 분의 임명 제청이 있던 날이었다. 어떠어떠한 분들이 임명 제청되었다고 부산스러운 소란이 일었던 것도 잠시일 뿐. 이내 고등법원 청사는 무거운 침묵으로 잦아들었다. 내심 제청되기를 짐짓 기대했던 많은 분들의 존재 또는 부재의 무게감은 이루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재판하는 일을 평생 과업으로 여기고 묵묵하게 제 할 일을 다 하셨던 분들의 기색 속에서 최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열패감과 자탄의 기미를 읽어낸 것은 아니었던가 한다.

그 무렵 한 동료 판사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는 한데, 내 삶의 주인은 나다. 내 삶의 최종 성패는 내가 정하기로 한다. 평생의 목표를 내가 아닌, 바깥의 남이 정해주는 곳에 두지는 말자. 출세, 벼슬, 부. 이런 대상들은 내가 좌우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것을 얻기에는 희소한 확률일진대, 여기에 인생을 거는 도박은 무모해 보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 노력해서 내가 소박하게 얻을 수 있는 것. 그 성취의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 평가해 볼 수 있는 일. 여기에 내 삶의 목표를 두고 평정심으로 정진하자. 기실, 결과보다는 노력과 정진의 과정이 더 아름다워 보일진대,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얻는 무엇을 찾는 데 중점을 두자.

하여 우리는 마음의 정원을 가꾸기로 했다. 그 정원의 한 부분에는 꽃을 피우게 하고 다른 부분에는 나무를 심기로 한다. 여기에 물과 거름을 주고 스스로 매일매일 돌보면서 즐거워하다 보면 좋은 결실도 얻을 것이다. 이십 년 후가 되어 그 정원이 잘 가꾸어졌는지 자평해 보고 그 성패에 대한 결과 역시 온전히 내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과연 이 맹세대로 살아왔는지 딱히 자신하지는 못하겠다. 삼 년 전 연말 이맘때, 당시 수년간 매 학기 출강해 오던 로스쿨 교무행정실로부터 내년 수업 강의계획서와 겸직동의서를 제출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매 학기 똑같은 겸직동의서를 법원행정처에서 받을 때마다 눈칫밥 애로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나이 오십 줄을 한참 넘긴 이 시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남의 허락을 받는 대신 사직서를 썼다. 내 삶의 시간, 방침은 내가 정한다는 이전의 결기 때문이었던가? 이 일은 그때 직장을 그만두는 변명의 한 구절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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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과정에서의 어지러움과 새로운 다짐들. 이 일들은 해마다 늘 반복되는 인생사다. 곰곰 생각해 보면 이런 세월의 매듭 때문에 허둥대는 일 역시 남사스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9월부터 12월까지 넉 달에 대한 영어 명칭들은 원래 어원으로 보자면 7월부터 10월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후 율리우스력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카이사르 생일이 낀 7월과 조카 아우구스투스 전승일이 속한 8월에 이들의 이름이 새롭게 끼어들면서 차질이 빚어진 것이란다. 봄이 오는 3월이 첫 달인 때도 있었단다.

남 일로 세월의 매듭까지 규정되어 재단되어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연말 다짐을 또 해 보게 된다. 새해에는 스스로의 달력을 만들고 싶다. 내 삶의 시간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나”이기 때문이다.

이 겨울 누군가로부터 받기를 기다리다 또 한 해를 넘겨야 하는 분들을 떠올리면서 든 생각이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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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8&no=810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