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우리가 갖춰야 할 진짜 면역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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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우리가 갖춰야 할 진짜 면역력은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온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세상의 혼란은 사람들 마음의 어지러움이기도 하다. 여러 계획과 전망이 참으로 어이없게 무너져버렸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앞에서 개인의 입지는 참으로 옹색하기 그지없다.

보이지도 않는 적에게 잡히지 않으려면 그저 집 안에 숨어 있는 것이 상책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같은 말이 이제는 널리 이해되고 있기는 하지만, 처음 듣는 이 생경한 어구의 억지스러운 불편감이 다 가신 것은 아니다. 과학적 근거가 있기에 그런 제안을 받아서 따르려고 하지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역시 다 뜻대로 되는 일도 아닌 듯하다. 이 또한 마음의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다.

3월 한 달 대부분의 재판이 미뤄졌다. 감염병 확산 우려 때문에 허다한 재판이 연기된 일도 초유의 사태였다. 그래도 급한 사건부터 재판 날짜가 잡히면서 법원청사에 출입하는 일도 다시 시작됐다. 요즈음 서초동 법원청사는 출입자 발열 체크를 위해 일부 출입문만을 열어놓고 있다. 그 때문에 불편하게도 들어가는 입구부터 장사진 줄을 서야 한다. 다만 고맙게도 줄 선 사람들 간격을 여유 있게 떼어놓기 위해 바닥에 대기 위치 표시를 해둔 배려가 좋아 보였다.

그러나 그 친절한 배려는 딱 그것까지뿐. 법정 앞에 이르고 보니 좁은 복도는 법정마다 대기하고 있는 재판 관계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것 아닌가. 그 이유는 곧 알게 됐다. 법정 방청객을 떨어져 앉히다 보니 만석이 돼 법정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란다. 보이는 데서만 흉내를 내는 전시행정의 무심함에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다. 그들을 달래느라 얼굴이 새빨개진 젊은 법정 경위들이 안쓰러워 보이긴 했다. `법원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는 푸념의 웅성거림 속에서 한때 이곳에 몸담았던 필자로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좀 더 여유 있게 재판 시간을 배정하고 법정 참석에 필요한 인원만을 미리 확인해 출입시키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였다.

나아가 과연 물리적 대면 재판만이 능사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더욱더 근본적으로는 변하는 시대상에 맞춰 아예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이 옳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이제는 필요하다면 종교 집회조차 영상으로 열리는 것이 권장되는 시대가 됐다. 그것이 크게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라면 말이다. 세속의 법적 회합은 무슨 이유로 왜 빨리 바꾸지 못한다는 말인가.

코로나19 여파는 교육 현장에서도 큰 혼란과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서울의 한 로스쿨 겸임교수로서 `사실인정론`이라는 제목의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올해는 비대면 영상 강의를 해야 해서 그 준비 때문에 꽤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지난 강의까지 모두 네 차례의 영상 강의가 이뤄졌다. 종전같이 강의실 현장에서 상호 소통과 교감 속에 강의하는 것에 익숙했던 필자로서는 한동안 어색한 버벅거림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점차 이 형태의 강의에 익숙해지는 중인데 강의가 부실할까봐 여간 학생들 눈치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학생들 반응을 다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강의실이 열릴 날을 기다리면서 불편함을 잘들 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총, 균, 쇠`에서는 질병, 전염병이 인류 문명의 발달과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잘 설파하고 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우리의 시스템과 삶의 방식을 크게 바꾸도록 하는 인류사적 체험 한가운데로 우리를 몰아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체험은 큰 태풍 속 풍랑을 작은 조각배를 타고 표류하는 고단함을 수반하는 일이다. 모든 애환의 바람이 잦아들 무렵 아직도 우리가 건재하고 있다면, 그때의 우리는 풍랑을 만나기 전의 우리와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또 곧이어 닥쳐올 다른 태풍을 이겨낼 면역력을 갖추고 말이다.

다만 사회적 거리 두기든, 비대면이든 3차원의 공간적 거리 두기만으로 끝나는 것은 답이 아닐 것 같다. 오히려 우리 마음만은 몸이 떨어진 거리만큼 더 가깝게 네트워킹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진정한 면역력을 갖게 된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민주적·자발적 참여 속에서 과학기술의 지혜가 잘 조화된 인간친화적 시스템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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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0/04/380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