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이 가을의 또 다른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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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이 가을의 또 다른 숙제

가을을 느낀다. 창문을 열자 아침 바람의 상쾌한 향기가 코앞을 맴돈다. 청명한 저녁 햇살도 화사하기 그지없다. 그 기운을 즐길라치면 조금씩 이른 저녁 어둠이 밀려오고 그 차분함에 머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그래서 가을은 유달리 조용하게 자기를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기엔 제격인 듯싶다.

아울러 가을은 겨울, 봄, 여름을 거쳐오면서 치열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한 해를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 준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몇 장 남지 않은 달력을 뜯어내면서 이 한 해를 또 이렇게 흘려보내야만 하는가, 자탄이 밀려오기도 한다. 아쉬움 속에서 왠지 갈 곳 모르게 허전한 마음만 바빠지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의뢰인을 만나 그의 애환을 들은 일이 있었다. 가을의 자탄을 들은 셈이다.

자수성가한 그는 지금은 그런대로 여유를 찾은 삶을 사는 부류에 속했다. 하지만 지난 세월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사이 여러 법적 송사에 휘말린 나머지 상당 부분의 시간을 사람과의 사회적 싸움 속에서 허비해 왔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역경이 지나간 지금, 이 가을을 맞이한 그는 “인생 지각”을 한 것은 아닌지 두렵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람들과의 씨줄, 날줄로 얽힌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 도와주고 의지하며, 지켜주는 속에서 한 인간은 생존한다. 보통이라면 잘 돌아가는 관계망의 선순환 속에서 우리는 많은 혜택을 보면서 살고 있다. 또 사회 시스템이 그리 짜여 있는 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돕는 일에 동참하기도 한다.

시스템이 잘 돌아가기를 바란다고는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이때 지켜야 하는 시스템의 규칙이 있다. 하지만 그 규칙 중에는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불합리함과 욕심, 이기심 때문에 잘 지키지 못할 것을 기대하면서 마련된 심술궂은 규칙도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그런 규칙의 표시판은 언제나 위반의 소지가 많은 취약한 장소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적한 장소에 가서 몰래 담배를 피워 볼라치면, 어김없이 그 장소에는 금연표시가 붙어 있는 형국과 매한가지다.

그래서 시스템은 이런 부조리 속에서 잘 돌아가지 않는 수가 왕왕 있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전에 만났던 의뢰인도 이런 분쟁의 고충 속에서 시간을 허비한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허물만을 들추어 탓하기에는 규칙 자체가 너무 엄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함정을 파 놓고 어서 빠져 주기만을 기다리는 이런 규칙이야말로 지키지 못할 일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처사에 해당한다. 이런 시스템 규칙도 문제 있기는 매한가지구나 하는 소감을 느꼈다면 지나친 편견일까.

주로 우리나라의 형사 시스템 한 부분과 관련이 있는 문제 제기인데, 더 상세하게 들어가는 것은 의뢰인의 개인사를 들추는 일이라 이 정도로 접어두고 싶다.

의사는 심신의 병을 가진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가다. 법률가는 사람의 사회적 병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의료인의 임무와 마찬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병이란 사람 탓일 수도 있고 사회 탓일 수도 있을 터. 사회적 시스템에서 물의가 빚어진 것이라면 바로 시스템에 대해 질문을 해볼 수 있겠다는 점에서 법률가의 치료적 역할에도 신경이 쓰인다.

그의 가을 ‘인생 지각론’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는 것이다. 그에게 지각도 지각 나름이라고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해주었지만,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 못했다. 이 가을 차분함 속에서 또 다른 숙제가 생긴 셈이다.

[김상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