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일과 삶, 그리고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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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일과 삶, 그리고 스트레스

2019년 새해 첫 달도 거의 지나가고 있다. 새해 소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분망함 때문인지 새로움에 대한 신선한 느낌도 벌써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두렵다. 세상만사가 늘 뜻대로 되지는 못할 것이기에 흐름에 마음을 맡겨두는 편이 옳지 이를 거스르는 것은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 뿐이리라. 흑 아니면 백을 요구당하는 세태 속에서, 그래도 회색빛 안전지대에 숨어들고 싶어지는 생존 방식의 비겁함도 지혜의 일종이리라 위안을 삼는다.

일 때문에, 또는 사람 때문에 주고받는 상처가 너무나도 크다.

이 상처를 피해 잠시라도 멍 때리고 있을라치면 그래도 자꾸 떠오르는 생각들 때문에 골치가 아파온다.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도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것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이 떠올린다. 갓 태어난 어린 아기들조차도 어른들의 성난 얼굴, 무서운 얼굴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단다. 뉴스 매체는 따뜻하고 위안거리가 되는 일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건, 사고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런 일들이 뉴스거리가 되어 클릭 조회 수가 늘게 되는가 보다. 이런 부정적 일에 대한 쏠림 현상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장착하고 나온 방어기제 때문임이 학술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공격받을 위험, 위협에 대비해 안전, 보호를 위한 심리적 예방 기제는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극복 과정에서 우리의 육체는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원시 시대 우리 조상 호모사피엔스는 자연 속 생존 과정에서 곰과 같은 맹수를 맞닥뜨리는 우연한 위험에 처해 성을 내면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도망갈 것인지 즉각적으로 결정해야 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대단히 높은 순발력이 필요할 터. 인간의 뇌는 평소에는 그렇지 않았던 코르티솔 호르몬을 대량 방출해 혈당 수치를 높인다. 그로써 신체의 대사활동을 촉진시켜 위험을 관리할 태세를 갖추게 한다. 이 방어 시스템이 적절하게 잘 작동한 조상만이 살아남아 후손을 남기고 오늘 우리를 여기에 있게 했다.

우리네 현대인들의 삶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철창 안 신세와 매한가지인 듯하다. 원시 조상들이 마주한 위험이 예기치 못한 우연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독 안에 든 쥐처럼 매일매일 이리저리 쫓기면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도전과제의 위협과 강박에 시달리는 일상을 겪고 있다. 이런 현대인의 만성적 스트레스는 때론 과부하가 걸리게 되면 마음과 육체까지도 망가뜨리고 만다. 잘못 관리된 스트레스는 심혈관계 질환, 우울증, 각종 직업병을 초래하고, 극단적으로는 우울증을 못 이긴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초래한다.

과로, 스트레스가 직업병을 초래하고 산업재해 사고로 이어지는 원인으로 볼 것인지 왕왕 법적인 문제가 된다. 자살이 일과 관련된 우울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특히 심각한 문젯거리다. 스스로 결행한 자살은 언제나 자신의 자유의지에 기인한 자해이고, 예외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일조차 정신착란으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는 돼야 구제된다고 하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과거 대법원 판례도 있었다.

필자는 판사 시절 어느 자살 사건 재판에서 망자의 주치의였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증언을 청취한 일이 있다. 판례 기준을 들어, 돌아가신 분이 우울증에 시달리던 끝에 죽음의 의미조차 가늠할 수 없는 심각한 정신장애가 있었는지를 문의했다. 치료의 성과로 호전이 되어 가면서 현실의 높은 벽을 다시금 자각하는 상황이 더 위험할 수 있었는데, 그만 그의 자살을 막지 못하고 치료에 실패했다는 역시나 우울한 답변. 그 끝에, “글쎄요, 단 한 번도 자살에 성공한 분들의 정신세계를 탐색할 기회가 없어서 이 질문에 답변하기 어렵네요.” 말장난 같은 규범의 잣대만에 의지한 채,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빠진, 오만하고도 어리석은 질문을 한 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고백해야 한다.

이번 주말만이라도 일과 사람의 상처, 인생고에서 잠시 해방돼 우리들 서로 간에 위로를 주고받고, 격려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것도 일종의 실존적 자각이라고 하겠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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