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제헌절 이야기

Home/법인칼럼/[사람과 법 이야기] 제헌절 이야기

[사람과 법 이야기] 제헌절 이야기

오늘은 제헌절이다. 제헌절이 대한민국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은 국민의 상식에 속한다. 대한민국헌법은 일제에서 해방된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즈음한 1948년 7월 17일 제정되었고, 그 이후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행 대한민국헌법은 1988년 시행된 개정 헌법이다. 제헌절은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공휴일인 다른 국경일과 달리 2008년부터 제헌절만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지만, 국기를 게양하는 국경일임에는 변함이 없다.

1977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헌법 전체를 손으로 적어서 제출하라는 숙제를 받았다. 실질적인 헌법 생활의 첫 시작은 이 숙제를 하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방학 숙제라는 것이 늘 그렇지만 학교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여전히 옥죄는 매우 성가신 존재임이 분명하다.

헌법을 손으로, 그것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써내는 이 숙제는 정말이지 “왕짜증” 중 대표선수였다. 지금은 순 한글로 적히게 되었지만, 당시 헌법은 가능한 한 모든 단어가 한자(漢字)로 되어있었다. 뜻 모를 한자투성이인 이 글을 펜글씨로 또박또박 그대로 옮겨서 적는 과제는 기억에 남는 역대급 고역담 중 하나였다.

한데, 이처럼 귀찮고 성가셨던 첫 헌법 생활은 그때로 그치지 않았다. 놀랍게도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성가심의 본질 역시 그다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법을 전공했고, 이어서 법을 가지고 밥벌이를 해오고 있다. 매우 어려운 법적인 난제에 부딪힐 때마다 합당한 새로운 답을 찾을 요량으로 헌법 조문을 뒤적이면서 당혹스러운 숙제 풀이를 하는 일이 있다는 말이다. 마치 종교인이 말씀의 의미를 다시금 헤아리기 위해 경전의 구절을 되새기는 것처럼.

필자와 같은 법률 전문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반 국민의 헌법 생활 역시 녹록한 것은 아닌 듯하다. 헌법은 다른 규범, 법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법과도 같은 영향력을 사람들 일상 속속들이에 발휘하고 있다. 법률 전문가도 아닌데도, 다른 법도 아니고 바로 헌법 문제 때문에 어쩌다 고심을 한 경험을 되돌아본다면 이 말을 이해하실 것이다.

사람들의 기본적 인권, 행복추구권, 평등권, 국민의 의무 등등의 문제는 헌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이들 권리나 의무에 관한 헌법 규정은 너무나도 지당한 말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권리를 지키고 의무를 다해야 하는 구체적인 상황 상황마다 복잡한 해석의 문제가 뒤따르곤 한다. 부당한 상황에 봉착해서 “아니, 그런 법이 어딨어?”라는 의문이 드신다면, 그것이 바로 헌법적 질문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헌법은 1948년 태어난 이래 이제는 인간의 평균수명 정도에 곧 다다를 만큼은 나이를 먹게 됐다. 그 나이를 먹는 동안 세월의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헌법은 그리 편히 지내온 것은 아닌 듯하다.

과거 커다란 정치적 정변이 나면 어김없이 헌법이 개정됐다. 권력자가 헌법을 마음대로 고쳤다가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이를 바로잡아 되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제는 헌법의 이름으로 권력자가 탄핵이 되는 헌법적 체험을 온 국민이 하기도 했다. 수도(首都)를 이전해야 하는 문제가 헌법적 쟁점이 되어 온 나라가 들썩거린 때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구절이 노랫말이 되어 길거리 시위 현장에서 불리기도 하는 나라가 됐다. 이런 정도로 대한민국은 헌법적 나라가 되었다고 자부해도 좋을 성싶다.

오늘날의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 법치주의의 기틀 속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사회·경제적 평등과 번영을 위해 자리를 잡게 됐다. 하지만 헌법의 이상을 다 구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갈 길이 험해 보이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헌법은 마치 공기와도 같아서 그 존재를 평소에는 그리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핍된 듯한 위기에 봉착하면 그 존재의 절실함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 헌법의 현대사를 둘러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도 잘 정리해서 후세에게 전해줄 필요가 있겠다. 제헌절 주말 속에서 헌법 이야기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 하나쯤은 찾아서 봐야겠다.

[김상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