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 이야기] 판사의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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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판사의 성향

에이미 코니 배럿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인준안이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 보수적 성향으로 알려진 그는 타계한 진보 아이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으로 대법관 자리에 앉게 됐다. 성향이 다른 대법관 교체로 인해 미국 연방대법관의 이념적 지형은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구성돼 보수주의적 성향이 강한 면모를 갖게 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26일 대법관 지명 수락 연설에서 배럿은 보수 성향의 앤터닌 스캘리아 전 연방대법관의 재판연구관 시절을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수락 연설을 했다. `나는 헌법을 존중한다. 스캘리아의 법 철학은 내 철학과도 같다. 판사는 법문에 충실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 판사는 (법에 동떨어진) 개인적인 정책적 견해를 앞세워서는 결코 안 된다.`

보수 대 진보라고 하는 정치적 잣대로 최고법원 판사의 성향을 가르는 일이 대법관 교체 때마다 쟁점으로 등장한다.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임명 때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마다 보수와 진보라고 하는 진영 논리가 심각하게 대립하곤 한다. 자파의 입장에 맞는 판사가 임명돼야 무언가 유리할 듯싶어 보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판사들은 자신의 성향을 정치적 잣대로 측정 당하는 것에 당혹감을 가지고 있는 듯싶다. 특히 판사가 한 판결의 결과를 놓고 정치적 논란 거리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게 된 것이 요즘 세태다. 때론 성난 여론의 뭇매를 맞는 곤경에까지 처하게 되면 상당한 직업적 회의조차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판결 역시 정치·사회적 지형 속에서 음미될 수밖에 없는 바라면 이것도 직업적 숙명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을까.

다만 판사나 판결의 성향을 분별하는 접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소 일반인에게는 생경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사법소극주의`와 `사법적극주의` 분별이 그것이다. 판사가 적용해야 할 법은 그 자체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예상하고 법전에 글로 써 둘 수 없는 노릇이다. 법은 일단 추상적 원칙을 세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구체적 사건에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감이 판사에게 넘겨지게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판사에 따라서는 일에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어떤 판사는 법률 규정과 선례를 가급적 충직하게 따르는 것이야말로 판사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판사는 입법자가 아니므로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판결에 반영하는 것을 지극히 꺼린다. 또 다른 극단에 서 있는 판사는 법의 공백을 다채롭고도 융통성 있는 해석을 통하여 메꾸는 일을 소임이라고 여긴다. 필요하다면 선례도 바꿀 수 있고 법이나 정부 정책이 헌법과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과감하게 위헌을 선언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 양극단을 `소극` 대 `적극`이라는 말로 자리매김한다면, 오늘날 판사들은 그 중간에 펼쳐진 스펙트럼 어느 한 지점 어간에서 일하면서, 때론 소극주의 쪽으로, 또 다른 사건에서는 적극주의 쪽으로 결론을 내린다. 한 판사가 내놓은 결론이 시간이 흐르면서 집적되다 보면 전반적으로 그가 지향하는 성향과 철학을 대략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소극` 대 `적극`은 장단점이 있기에 이를 두고 어느 쪽이 옳다고 한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다. 시대 여건이 변했음에도 고식적인 선례에 갇혀 있는 일. 기득권, 다수파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소수파에 숨 쉴 여지도 주지 않고 억압적 법률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일. 반면에 권력이나 인기에 연연한 나머지 법률을 판사가 자의적으로 왜곡하는 일. 이 모든 것은 판사의 소임을 저버린 것이자 세상을 어지럽히는 처사다.

이번에 임명된 배럿 대법관은 수락 연설에서 말했듯이 확실히 `사법소극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소극주의가 정치적 보수주의와 꼭 맥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법조문에 충실한 판사가 스스로 표방한 바와는 달리 항간에서 예상하듯 보수파를 위한 정치적 칼춤을 출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이번 미국 대법관 임명에 대해 정치적 해석으로 일관하는 것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우리나라 대법관, 헌법재판관 임명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과 같은 맥락이다. 판사의 직분과 성향에 대한 재음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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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0/10/1117286/?sc=3050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