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탐사] 여성에 온정적인 로스쿨생도 “성범죄 가볍게 처벌”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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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탐사] 여성에 온정적인 로스쿨생도 “성범죄 가볍게 처벌” 응답

로스쿨생의 성범죄 판단

‘30대 초반의 남성 A씨는 2004년 어느 날 새벽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피해자 B씨(16·여)와 함께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운전하려면 자고 가야 한다고 하며 C모텔의 객실을 두 개 잡은 다음, 같은 날 오전 10시쯤 위 모텔에서 피해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다가 거부당하자 피해자를 강간했다(인터넷 채팅 강간 사건).’ 

9곳 272명 설문조사
로스쿨생 55% 성차별 성향 지녀
적대적·온정적으로 갈리지만
성범죄 사건 판별엔 별 차이 없어

위와 같은 성범죄 사건은 수사기관이나 법관의 평소 신조나 성차별적 태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email protected]]

중앙SUNDAY는 개인의 성차별 의식이 성범죄 사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향후 사법 프로세스에 관여해 성범죄를 다룰 가능성이 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전국 로스쿨 중 9곳에서 272명이 응했다. 성차별적 성향은 크게 ‘적대적 성차별주의’ ‘온정적 성차별주의’ 두 가지 성향으로 구분했다.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을 경시 또는 비하하는 태도를 의미하고,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고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분석 결과 조사 대상자의 55.1%(146명)는 양쪽 성차별주의 성향이 모두 높거나, 어느 한쪽 성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대적 성차별주의보다는 온정적 성차별주의 성향에 해당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머지 절반가량(119명)은 두 성차별주의 성향이 모두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7명은 일부 문항을 채우지 않아 제외했다. 이들에 대해 6개 성범죄 시나리오를 주고 ▶피해자 책임 ▶피해자의 고통 정도 ▶가해자 처벌 강도 ▶범죄의 심각성을 1~5점 척도(5점으로 갈수록 강해짐)로 표시하게 한 결과 성차별주의 성향이 높을수록 “어느 정도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으며 가해자를 가볍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정적 성차별주의자들은 표면적으론 여성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다. 남자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신체가 약한 여성을 돌봐주고, 여성은 남성을 거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다. 노골적으로 ‘여성은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라고 여기는 적대적 성차별주의자들에 비해 완화된 성차별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을 판별하는 데 있어선 두 성차별주의가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email protected]]

‘인터넷 채팅 강간 사건’에서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피해자의 책임은 어느 정도인지’(5점에 가까울수록 책임 있음) 묻는 항목에서 온정적 성차별주의 성향이 가장 높은 그룹(14명)의 평균 점수는 2.86점으로, 적대적 성차별주의 성향이 가장 높은 그룹(11명)의 응답 점수 3.0점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온정적 성차별주의 성향이 가장 낮은 그룹(110명)의 평균 점수는 1.77점이었다. 이 그룹은 ‘어떤 강도로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느냐’를 묻는 항목에선 평균 점수 3.79점으로 전체 응답자의 평균 점수인 4.3점보다 낮았다. 적대적 성향이 높은 그룹(3.91점)과 비슷한 점수다. 
  
온정적 성차별주의 성향이 높은 그룹은 ‘범죄의 심각성’(10점 척도)도 상대적으로 가볍게 판단했다. 새벽 찜질방에서 소주병을 깨 협박하며 강간을 시도한 사건(‘찜찔방 강간미수’)에서 온정적 차별 성향이 높은 그룹의 평균 점수는 7.69점으로, 차별 성향이 낮은 그룹의 평균 점수(8.01점)보다 낮게 나타났다. 6개의 시나리오 중 ‘미성년자 공원 추행’ 등의 시나리오에 관해 응답자들은 피해자 책임이나 가해자 처벌 강도, 사건의 심각성에 관해 비교적 의견이 일치했지만 ‘인터넷 채팅 강간’과 ‘회사 후배 모텔 강간’ 사건에선 응답자의 성차별 성향에 따라 답변에 차이가 났다.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높은 집단은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5점에 가까울수록 심함)도 낮게 추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터넷 채팅 강간 사건’에서 평균 4.3의 고통을 느낀다고 답변해 이 성향이 낮은 집단(평균 4.75)보다 적다고 생각했다. ‘직장 후배 모텔 강간’ 시나리오에서도 적대적 성차별주의 성향이 높은 집단의 평균 점수는 낮은 집단과 비교할 때 0.21점 적게 나타났다. 
  
홍성범 법과인간행동연구소 전문위원은 “차별성향이 짙은 사람은 범행이 미수에 그쳤거나 피해 발생 전에 피해자의 능동적 행위가 있었던 사례에서 피해자의 책임을 높게 보는 경향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성차별 의식, 성별과 100% 일치 안 해 
  


전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덜 차별적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남성 10명 중 3명(51명·29.8%)은 적대적·온정적 성차별주의 성향이 모두 낮은 것으로 나왔다. 분석 대상 여성 94명 중에도 온정적 성차별주의 성향을 보인 사람이 7명(7.4%) 있었다. 성차별주의 설문조사에서 ‘방과 후 엄마가 있어야 아이들 정서에 좋다’ 등 남녀의 전통적 성 역할 관련 항목에 동의한 여성들이다. 여성의 72.3%(68명)가 양쪽 차별 성향이 모두 낮은 그룹에 속했다. 홍 위원은 “여성 대부분이 노골적인 여성 차별에는 반대했지만 표면적으로 여성에게 우호적으로 보이는 온정적 성차별주의에는 경계심이 덜했다”고 해석했다. 조사 결과를 접한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은 “온정적 성차별주의자들은 자신의 차별의식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존 사회 관습에 잘 적응해 온 사람일수록 무심결에 성범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묵인하거나 방치하는 입장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임장혁·박민제·이유정 기자 
김나윤 인턴(성신여대 화학4) 
[email protected] 

 

출처: 중앙일보 탐사팀 임장혁 기자